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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간통죄 위헌 결정에 대한 여파가 심상치 않다. 이미 각종 매체들은 경쟁적으로 간통죄 폐지의 영향에 대해 보도하고 있는데, 이 중 간통죄 폐지를 대신할 보완장치로 매스컴 등에서 유력하게 논의되는 것이 바로 이혼 소송상 징벌적 배상(Punitive damages)의 도입이다.

징벌적 배상이란 영미 법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이는 주로 영미 법상 사적 행위 소송(Tort)의 배상 방법 중 하나로 법원은 가해자의 행위가 매우 부당해 사회적으로도 제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이를 피해자의 손해배상 금액에 반영해 통상적인 금액을 크게 상회하는 배상금액을 선고할 수 있다.

그러나 징벌적 배상의 도입은 순간의 판단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혼 소송상의 징벌적 배상이 외국의 선진사례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

몇몇 해외 유명인들의 천문학적 이혼 배상금 지불 뉴스를 보면서 미국 등 국가에서는 이러한 배상이 일상화되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이는 극단적인 사례일 뿐 실제 미국 등 영미 법 국가들의 이혼 소송에서 간통에 대한 징벌적 배상이 선고되는 예는 드물다.

미국의 경우 대다수의 주에서 간통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며 책임을 규정한 주들 역시 실제 처벌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과거 이혼 소송에서 징벌적 배상의 근거가 되었던 애정의 소외(Alienation of affection)나, 외도(Criminal conversation) 같은 전통적 개념은 대다수의 주에서 더 이상 인정하고 있지 않거나 사문화된 실정이다. 무엇보다 징벌적 배상 자체도 개인적 문제에 국가가 개입할 여지를 준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 실정이다.

헌법재판소가 간통죄 처벌을 규정한 형법 241조는 위헌이라고 결정한 26일 서울시내의 밀집한 변호사 사무실들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_ 연합뉴스


현재 미국에서는 간통 자체를 이혼 소송의 배상 원인으로 보기보다는 간통 등에 의해 혼인 상대방의 피해가 생겼을 경우 이를 적절히 판단하겠다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배우자의 간통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간통에 의해 재산의 손실 혹은 혼인 상대방의 육체적·정신적 피해가 있을 경우 이를 이혼 소송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이혼에 의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그리고 상대방에게 이에 따른 책임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지 그 원인이 간통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더 이상 미국의 이혼 소송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도 징벌적 배상이란 영미 법상의 독특한 사적 행위 소송에서 근거한 외국의 법리이다. 징벌적 배상의 바탕이 되는 사적 행위 소송 자체가 한국 법에 적용되지 않는 생소한 개념이며 징벌적 배상에 대한 조문, 판례 등을 한국에 적용할 수 있을지도 매우 의심스럽다. 겉보기에 그럴 듯하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검토 없이 한국의 법리에도 맞지 않고 적용 국가들의 실정과도 동떨어진 징벌적 배상을 무리하게 적용하려 한다면 자칫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안광민 | 법무법인 천고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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