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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은 음식을 싣고 미래를 향해 달린다. 딱히 정해진 목적지는 없다. 바퀴 달린 레스토랑에는 그것이 더 매력이다. 촬영이 있을 때마다 스태프들과 함께 따라다니며 음식을 책임지는 밥차 이야기다. 나름 유명해진 어떤 밥차 주인은 요리책도 냈다. 낡은 봉고트럭에 인생을 걸고 핸들을 잡는다. 밥차는 희망, 보람, 미래다.

미국 도심에서는 푸드트럭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수도 워싱턴D.C.의 백악관 앞 공원에 늘어선 푸드트럭에서는 음료수와 핫도그를 판다. 형형색색으로 페인팅하고 최대한 상품을 알릴 수 있도록 창의적으로 트럭을 디자인했다. 성공신화도 있다.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파크에서 핫도그 푸드트럭으로 시작한 ‘셰이크 색(Shake Shack)’은 순항하며 미 증권시장까지 진출했다.

이 둘의 차이는 밥차는 대부분 불법이고 푸드트럭은 합법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푸드트럭을 규제개혁의 제1안건으로 선정해 추진했다.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에서 운영되는 푸드트럭을 도입하면 청년 창업을 육성하고 유관산업 발전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정부는 지난해 3월20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규제개혁 민관합동회의를 열었다. 이때 ‘손톱 밑 가시’로 푸드트럭에 대한 규제를 언급하고 ‘가시 빼기’에 나섰다.

푸드트럭에는 여러 부처의 규제가 이중삼중으로 얽혀 있다. 이에 따라 서둘러 규제 풀기에 올인했다. 정부는 화물차에서 음식물 조리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자동차운수사업법을 개정하고 식품위생법 규정도 바꾸었다. 정부는 10년 이상 장기 민원이 한 방에 풀렸고 이로 인해 2000대의 푸드트럭, 6000명의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업계에는 소형 트럭의 판매가 증가하고 자동차 튜닝을 통한 일거리가 늘며, 청년들에게는 새로운 일거리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결과는 판이하다. 현재까지 운영되는 푸드트럭은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무지개는 잿빛 구름이 돼버렸다.

푸드트럭 창업자들의 창업과정을 따라가 보자. 일단 소형 트럭을 구입하고 개조한 뒤에는 자동차구조변경과 안전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위생교육과 건강진단, 영업신고 등의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각종 인허가를 마쳤으나 정작 영업할 장소가 없는 것이다.

정부는 당초 유원시설 내에서만 푸드트럭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다 영업장소가 너무 적다는 민원이 생기자 도시공원, 하천 등으로 확대했다. 국토교통부가 인터넷에 게시한 ‘푸드트럭 영업이 가능한 전국 도시공원 목록’에는 영업장소가 3222개소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차량진입이 어렵고 규모가 작아 영업하기 어려운 곳이다.

규모가 큰 놀이공원은 이미 영업 중인 상인들이 있어 추가로 허락을 하지 않는다. 고궁은 문화재로서 훼손할 여지가 있는 음식물의 반입 자체를 막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장소를 잡았다 해도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장소자체에 사람이 몰리지 않아 다른 곳으로 움직이면 곧바로 위법이 된다. 푸드트럭을 타고 거리로 나서는 순간 도로교통법에 저촉된다. 기동성이 생명인 푸드트럭의 발을 묶어놓고 영업하라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불법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간다고 해도 영업은 쉽지 않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대부분 상권이 형성돼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소규모 자영업(음식점, 편의점)이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이례적으로 많아 푸드트럭의 진입을 반길 사업자는 아무도 없다. 권리금에, 세금에 각종 비용을 투자하면서 마련한 사업장에 비용을 들이지 않은 새로운 경쟁자가 생기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기존 포장마차나 노점상들도 경쟁자의 출현에 수수방관할 리 만무하다.

국토부는 4일 지난 1월 중 소형 트럭이 많이 팔렸다면서 푸드트럭의 허용도 한 요인이라고 했다. 그러나 푸드트럭은 잘못된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푸드트럭에 손댔던 사람들은 그 과정이 ‘악몽’이라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말린다.

전국 최초로 영업 허가를 받아 관심을 끌었던 충북 제천의 푸드트럭도 폐업 위기에 몰리면서 제도를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출처 : 경향DB)


푸드트럭을 소재로 최근 개봉한 영화 <아메리칸 셰프>의 주인공은 아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고객들의 입맛에 맞는 최상의 음식을 만들까 고민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바퀴 달린 맛집이 나오기 힘들다. 정작 맛을 신경 쓰며 정성을 쏟기보다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단속원을 피하는 것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가시를 뽑겠다고 각오한 지 1년이 돼간다. 밥차가 푸드트럭이 되는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


박종성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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