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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구조 과정의 의문점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을 두고 외압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고 한다. 일부 세월호 참사 가족들과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 등이 영화 상영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수 있는 작품이라며 상영 반대의사를 공식 표명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보면 최근 광주비엔날레에서 걸개그림 ‘세월오월’의 전시 거부 사례와 매우 흡사하다. 당시에도 정부와 광주시가 개입해 오히려 문제를 키웠다.

무엇보다도 영화제 조직위원장이 정치적 이유로 작품 상영 취소를 요구한 것은 부산국제영화제 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영화제 측은 아직까지 원칙적인 상영 고수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영화제 측이 부산시장의 요구를 끝까지 외면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가 영화제 예산의 절반 정도와 행정적 지원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제 측이 부산시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예산 삭감 등 각종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2일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관련 기자회견에서 이용관 집행위원장(오른쪽)이 영화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_ 연합뉴스


부산국제영화제가 단기간에 전 세계 5∼7위권 영화제로 자리 잡은 것은 출범 이후 줄곧 관의 개입을 차단하고, 영화제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전통을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영화제에서는 그동안 제주 4·3항쟁, 고 김근태 고문 사건, 제주 강정마을을 다룬 작품 등 논란이 된 영화들도 적지 않게 소개했다. 이번에 MBC 해직기자 출신인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와 안해룡 감독이 공동 연출한 <다이빙벨>은 아직 전체 내용이 공개되지도 않은 상태다. 배급사가 다이빙벨 투입을 둘러싼 과정 등을 통해 세월호 참사 관련 의문점을 다룬다고 소개한 게 전부다.

그럼에도 정치적인 이유로 관이 개입해 이미 상영 계획이 공표된 특정 영화에 대해 갑자기 상영 취소를 요구하는 것은 19년 동안 지켜온 부산영화제의 가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라는 영화제를 보기 위해 부산을 찾는 외국의 영화인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다. 국제적으로 ‘세월오월’ 사태에 이어 예술에 대한 폭력,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설령 정치적으로 논란이 있다 하더라도 작품의 판단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면 오히려 영화 상영을 막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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