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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라면 나들이객들이 오갔을 일요일 한낮 덕수궁 돌담길에 인적이 드물었다.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도로에도 차가 별로 없어 퇴근 시간이 15분 가까이 단축됐다. 코로나19의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도시의 풍경은 눈에 띄게 달라졌고 사람들의 일상은 정상 궤도에서 벗어났다.

스포츠도 코로나19를 피해갈 수 없었다. 정규시즌 막바지에 접어든 프로배구는 순위싸움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교통 접근성이 좋은 서울 장충체육관의 경우에는 평일에도 좌석이 매진된 것은 물론이고 입석 관중이 수백명에 달할 정도로 팬들의 발길이 잦았다. 그러나 프로배구는 25일부터 무기한 무관중 경기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보다 앞서 관중을 들이지 않기로 결정한 여자프로농구의 선례를 따른 것이다. 시즌 개막을 앞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는 개막 일정 조정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오는 7월 개막하는 2020 도쿄 올림픽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도쿄올림픽조직위원회가 지난 14일 열었던 기자회견에서 나온 기자들의 질문은 모두 올림픽 개최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IOC와 조직위는 “대안은 없다”며 취소나 연기 없이 예정대로 올림픽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정상 개최가 가능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외신 보도는 끊이지 않고 있다.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이래 올림픽이 취소된 건 전시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올림픽 출전 선수 1만1000여명, 패럴림픽 출전 선수 5000여명이 결전의 날을 기다리며 땀흘리고 있다. 스포츠에서 시즌은 매년 돌아오는 것이고 올림픽 역시 4년마다 돌아오는, 불변하는 약속이었다.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또박또박 훈련하고 경기장에 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이란 사실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쉼없이 돌아가던 쳇바퀴가 멈추고 일상에 균열이 생기면 그 빈틈 사이로 새로운 갈등이 비집고 올라온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한국과 일본, 중국의 스포츠를 강타하기에 앞서 미국 프로야구는 불신이라는 재앙에 맞닥뜨렸다. 메이저리그 휴스턴의 조직적인 사인 훔치기 사실이 밝혀지면서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한다’는 명제는 스포츠를 성립하게 만드는 토대다. 그러나 휴스턴은 사인 훔치기를 통해 상대 선수들을 기만했고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까지 차지했다. 선수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명제가 배반당한 상황에서 이제 어떤 선수가 휴스턴을 떳떳한 경쟁 상대로 인정하려 할까.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이달 중순 스프링 캠프에 소집된 후 휴스턴에 대해 한마디씩 하기 시작하면서 겨우내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불신과 갈등은 이제 공공연해졌다. 휴스턴의 형식적 사과는 다른 구단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선수들은 휴스턴 선수들을 징계하지 않은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를 향해서도 거침없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메이저리그의 2020시즌이 약속대로 돌아오고 있지만 선수들은 예전과 같을 수 없다. 바이러스를 진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메이저리그의 일상도 당장 복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희진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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