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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코로나19’로 인하여 다시금 주목을 받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이렇게 갑자기 반전한다. 오랑시에 갑자기 들이닥친 페스트. 초기에는 다소 주춤하여 도시는 “저녁마다 변함없이 인파로 가득 찼고 극장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지만, 갑자기 사망자가 늘어나면서 도시를 폐쇄하라는 공문이 도착한 것이다.
그런 정도의 위기는 아니지만, 지금 우리 사회도 전대미문의 사태를 겪고 있다. 시즌 막바지의 혈전이 벌어져야 할 경기장도 텅 비었다. 아니, 물론 그곳이 직장이요 삶의 터전인 선수들은 여느 때처럼 그들의 요람이자 무덤을 지키고는 있다. 겨울 시즌 경기들이 무관중으로 치러지는 중이다.
누구는 조금 고약한 말도 한다. 무관중으로 경기를 해보니 이제야 관중 귀한 줄 알 거라는 핀잔 말이다. 그런 면도 있다. 관중을 ‘소비자’로만 인식하고 그런 관점에서만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온 폐단이 있다. 몇몇 선수들은 팬들의 성원을 귀찮아하는 듯한 인상마저 남기기도 했다. 함께 스포츠문화를 만들어가는 공동체라는 생각이 여전히 빈곤하다. 그러나 지금의 무관중 경기에서 굳이 그러한 허점을 뾰족하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많은 선수와 팬들이 서로를 갈망하고 있다. 비록 지켜보는 관중은 없지만, 환호하는 팬들은 없지만 선수들은 뛰고 달린다. 현장에 가질 못하고 집에서 관전하는, ‘집관’하는 팬들은 선수들을 성원하기 위해 구단 홈페이지를 수시로 찾는다. 이렇게 지금 서로는 서로의 존재를, 부재 속에서, 확인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페스트> 상태의 오랑 시민들은 아닌 것이다. 카뮈는 이렇게 썼다. “페스트는 모든 사람에게서 연애의 능력과 우정을 나눌 힘조차도 빼앗아버리고 말았다. 연애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미래가 요구되는 법인데, 우리에게는 이미 순간순간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물론 우리의 현실도 만만치 않다. 3월14일로 예정된 프로야구 시범경기는, 1983년 이래 처음으로 모조리 취소되었다. 3월28일로 예정된 개막 경기도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프로축구는 2월29일로 예정되었던 K리그1 개막 경기를 연기했다. 언제 개막전을 치를지도 미지수다. 사태의 추이에 따라 시즌 전체 일정을 다시 짜야 한다. 프로당구협회(PBA)도 3월 초의 PBA-LPBA 파이널 대회를 연기하기로 했다.
이러한 비상한 상황은 언젠가 반드시 끝이 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태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일종의 낙관을 품은 방관은 실질을 호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 없다”는 <페스트>의 구절처럼, 팬과 선수들이, 부재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절실히 확인하는 이 상황에서, 각 종목의 협회와 구단은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이번에 확실히 익혀야 한다. 위기대응의 원칙과 그에 따른 상호 간의 태도와 이로써 새롭게 규정되는 매뉴얼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 모든 말과 교섭과 결정은 반드시 문서로 기록되어야 한다.
스포츠는 몸과 몸이 경합하는 세계다. 이때 선수들의 보건안전을 어떻게 구비할 것인지, 다시 말해 무관중 경기를 치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실제로 몸을 쓰는 선수들, 땀 흘리고 소리치는 선수들의 경기 중 안전과 일상 속 보건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이번 기회에 적극 검토해야 한다.
다시 <페스트>를 보면, 카뮈는, 시민들이 사태 이전과 비교해 이후에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여준다. 단지 상황이 호전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관계가 새롭게 결속되는 것을! 페스트에 맞서 싸우던 타루는 의사 리외에게 말한다. “페스트만 겪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 바보 같군요. 물론 사람이란 희생자들을 위해서 투쟁해야죠. 하지만 더 이상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투쟁은 뭐하러 하는 겁니까?” 그러면서 제안한다. “해수욕을 하러 갑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해안가로 간다.
우리에게도 곧 그날이 올 것이다. 우리 모두의 필사적인 연대와 노력으로 ‘코로나19’는 물러갈 것이고, 그러면, 새봄이다. 그때 무엇을 하겠는가. 당장 경기장으로 달려가자. 마스크만 끼고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너무 바보 같지 않은가.
<정윤수 스포츠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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