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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개인이 없으면 공동체도 없어
ㆍ개성 존중하되 연대 발휘돼야
ㆍ포용과 혁신 정치의 기초로
H에게. 경향신문으로부터 ‘길 위에서’라는 코너의 원고 청탁을 받았습니다. 불현듯 떠오른 것은 미국 작가 잭 케루악의 소설 <길 위에서(On the Road)>입니다. 단지 제목이 같은 탓만은 아닙니다. 케루악이 미국 영토를 가로질러 삶의 의미를 찾고 있듯이, 이 코너 또한 개인과 사회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길’이 거시적으로 한 사회의 장구한 흐름이라면, 미시적으로는 한 개인의 기나긴 일생입니다. 바로 이 길 위에 잠시 멈춰 서서 지나온 과거와 나아갈 미래를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사회의 흐름이란 측면에서 올해는 각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광복 70주년이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지난 70년은 되찾은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1948년 정부 수립, 1960~1970년대 산업화와 1980년대 이후의 민주화로 나타났습니다.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선진국을 짧은 시간 안에 따라 잡고자 했던 ‘추격 산업화’와, 그 산업화의 토대 위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해 결코 적지 않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쟁취했던 ‘추격 민주화’는 우리 현대사의 분명한 빛입니다.
하지만 그 흐름의 현재적 풍경은 자랑스럽다기보다 외려 초라해 보입니다. 신흥공업국을 대표해온 경제적 고도성장과 아시아를 선도해온 정치적 민주화는 다른 한편으로 지나친 경쟁만능주의, 구조화된 빈부격차, 격렬한 이념갈등, 유례없이 높은 자살률 등의 짙은 그늘을 만들어 왔습니다.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서 볼 수 있듯 ‘다시 태어난다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싶지 않다’(56.9%)는 응답이 ‘태어나고 싶다’는 응답(43.1%)을 추월했습니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적 가치는 부재한 채 화폐 및 권력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이익과 욕망의 네트워크만 도드라진 게 바로 우리 사회의 현주소인 것으로 보입니다.
모바일 여론조사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서 태어나겠다' _ 두잇서베이
개인의 일생이란 측면에서도 위험들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사회적 신분을 결정하는 대학입시, 해법이 요원한 청년실업, 언제 퇴출될지 모르는 공포의 구조조정, 은퇴 이후 기나긴 노후 빈곤이 개인의 우울한 생애사를 이룹니다. 그래도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열심히 일하면 나와 가족이 제법 당당하게 먹고살 수는 있었습니다. 당시 80%에 가까운 사람들이 중산층임을 자부했던 통계는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중산층은 40%대로 줄어들었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임금노동자의 30%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와 화려한 스펙들을 쌓은 다음 비정규직의 바다를 정처 없이 항해하다 노후 빈곤과 고독사(孤獨死)로 이 세계와 작별할지도 모르는 삶이 바로 개인의 초상인 것으로 보입니다.
H가 보기에 제가 현재를 너무 비관적으로만 이해하는 건가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통찰한 ‘우리는 각자 존재하고 나는 홀로 소멸하게 된다’는 무기력과 고립감과 두려움 앞에 우리 사회와 개인은 내던져져 있습니다. 제가 정녕 우려하는 것은 공동체로서의 사회의 역동성이 상실되고 자율로서의 개인의 활력이 위축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저는 광복 70주년인 현재, 사회와 개인의 이중 위기를 극복할 ‘연대적 개인주의’를 새로운 규범적 지향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개인을 경유하지 않는 사회적 변화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모든 것들은 ‘나’를 경유할 때 의미를 갖게 되며, ‘나’를 통해 우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개인주의는 자유주의와 다원주의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연대는 여럿이 함께 일을 하거나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합니다. 사회 구성원이 공동체적 정체성을 경험하고 확인하는 게 다름 아닌 연대입니다. 연대가 함의하는 것은 ‘차이 속의 공존’이자 ‘공존 속의 차이’입니다. 농부 전우익이 일찍이 말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는 연대에 담긴 정신적 가치를 적절히 상징합니다. 개인이 갖는 개성을 존중하되 공동체적 연대가 발휘되는 것이야말로 국민 다수가 소망해온 사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연대적 개인주의는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요. 먼저 경제생활은 삶의 기본을 이루는만큼 이에 대한 일대 개혁이 이뤄져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포용적 성장과 정의로운 분배를 위한 과감한 자본시장 및 노동시장 개혁, 재정정책과 복지정책 간의 지속가능한 균형은 매우 중대한 과제입니다. 더불어 차이와 공존의 문화적 문법을 일궈내야 합니다. 그 문법의 핵심은 함께 살아가는 타자에 대한 성찰과 배려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제도개혁과 문화적 실천을 선도할 정치개혁이 선행돼야 합니다. 포용과 혁신의 정치야말로 새로운 발전 및 번영의 제도적 기초입니다.
길 위에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본 것들을 오랜 벗 H에게 적어봤습니다. 이제 머잖아 봄이 오면 산과 대지는 갈색에서 초록으로, 초록에서 녹음으로 바뀌어가고, 뜨거운 한여름의 절정에 광복 70주년의 그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날이 오면 흔들리는 중앙선을 타고 가 한갓진 운길산역에 내려 북한강변을 걷고 또 걸으면서 그 길 위에서 광복의 기쁨과 새로운 각오를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모쪼록 그날까지 내내 건강하길 빕니다.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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