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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홍콩의 액션배우 청룽(成龍·성룡)이 “나는 반 한국인이다”라는 발언을 해 화제를 모았다. 영화 시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에 도와준 것이 한국이어서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며 이같이 밝힌 것이다. 이는 청룽이 영화 홍보만을 겨냥한 발언이 아니라는 게 영화계 전언이다. 그는 무명배우 시절인 1970년대 후반 서울 충무로에서 머물며 한국인 영화사 사장의 신세를 진 것을 평소 자주 회고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 여성과 교제해 한국어도 할 줄 아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덤에 오른 뒤에도 한국의 불우아동돕기 자전거 기증 등 한국과의 친분을 이어왔다.
청룽의 ‘반(半) 한국인’ 발언은 친밀감의 표현이다. 한국인은 아니지만 한국을 잘 알고 좋아한다는 의미일 터이다. 그 말고도 한국에 애정을 가진 외국인은 많다. 한국 국적자나 한민족을 일컫는 사전적 의미의 한국인은 전 세계에 8000만명을 상회한다. 그러나 국적이나 혈통을 넘어 한국인의 정서를 가졌다면 ‘범 한국인’으로 대우할 만하다.
한국 군대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MBC '진짜사나이'에 출연했던 호주 출신의 샘 해밍턴 (출처 : 경향DB)
국내에서 청룽과는 정반대 의미로 ‘반 한국인’을 언급했다가 유죄판결을 받는 사건이 벌어졌다. 초등학교 6학년 교사가 김치를 먹지 않는 다문화가정 어린이에게 “반이 한국인인데 왜 김치를 못 먹나”라고 타박한 것이다. 교사는 이 어린이가 질문을 자주 해 수업 분위기를 해친다며 학급 전체가 “××는 바보”라고 3번이나 크게 외치게 하기도 했다. 아이는 병원에서 수개월 동안 심리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법원은 “교육자로서 포용하고 함께 걸어가야 할 다문화가정 어린이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준 사실이 인정된다”며 벌금 300만원형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한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 감정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수업에 지장을 준 행위와 다문화가정 자녀라는 사실은 전혀 별개의 사안임에도 공격 소재로 삼은 배경에는 옹졸한 순혈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한 다리만 건너도 ‘베트남 새댁’이나 ‘우즈벡 며느리’와 마주치는 현실을 외면한 처사다. 2020년에는 청소년인구의 20%가 다문화가정 출신이 될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지금의 한국인이 교사가 말한 ‘반쪽 한국인’이 되는 날도 올지 모른다. 역지사지할 일이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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