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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에 있는 말 중에서 외국어로 정확하게 옮기기가 어려운 단어가 간혹 있다. 가령, ‘여유’라는 말에 꼭 맞는 영단어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나 공간의 여유와 같은 물리적인 개념을 영어로 표현할 때는 그나마 가능하지만, 생활의 여유와 같은 용법으로 쓰일 때는 직역이 거의 불가능하다. 일대일 대응이 되는 단어를 찾는 대신 대충 풀어서 쓰면 물론 의미는 전달된다. 하지만 말이라는 것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못지않게 그 표현의 맛과 느낌도 중요하다. ‘멋’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의복의 멋이야 ‘스타일’로 대체하면 되지만, ‘멋을 아는 사람’이라 할 때는 딱 맞는 영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평소 사용하는 어휘 중 이런 말이 많은 사람은, 외국 사람과 얘기할 때 말문이 툭툭 막히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만큼 우리는 ‘멋’과 ‘여유’를 아는 민족이고,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거론될 만큼 그 개념들을 단어로 정비를 해놓았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상황이라도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경우도 있다. 버젓이 쓰이는 우리말인데 어째 외국어로 말하려니 쑥스럽거나 창피한 단어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나대지’ 혹은 ‘노는 땅’이라는 말이다. 버스나 전철을 타고 가다가 공터 같은 곳을 지나치면 아저씨들이 이 단어를 쓰는 것을 엿들을 수 있다. “여기 전부 노는 땅이여!” 또는 부동산에 들어가 상담을 받다보면 으레 몇 번은 등장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건설이나 투자에 밝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말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바로는 영어에 황무지를 뜻하는 ‘wasteland’는 있어도 땅이 놀고 있다는 표현은 없다. 직역을 하면 ‘playing ground’이지만 이건 놀이터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우리말로 ‘논다’는 말이 가지는 약간의 부정적 색채가 가미된 의미로는 더더욱 영어 번역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건물이나 담, 또는 그 밖의 인공물이 없는 땅을 가리켜 우리는 그 땅이 ‘놀고 있다’고 얘기한다. 초목이 바람에 나부끼고, 돌 위엔 잠자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놀고 있다. 버섯이 포자를 터뜨려 날려 보내고, 새들이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는 곳이지만, 놀고 있다. 광합성에 의해 탄소가 저장이 되고, 물과 무기물이 토양에서 순환되고 있지만, 여전히 이곳은 놀고 있다.


수자원공사 성남권 관리단 직원들이 노는땅에 농사를 짓고 있는 모습. (경향DB)


과연 뭘 그리 놀고 있을까? 한번 들여다볼 일이다. 아저씨와 부동산업자와 건설 투자가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자연이 어떻게 팔자 좋게 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실제로 동물의 놀이행동은 중요한 생물학 연구 분야 중 하나다. 놀이는 동물 신체의 성장을 돕고, 성체가 되었을 때 필요한 각종 사냥, 도피, 교미 행동 등을 미리 연마하게 해준다. 또한 놀이를 통해 집단의 여러 구성원들을 알게 돼 장차 사회구조에 무리 없이 편입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놀이는 자신의 신체적 움직임에 익숙해지고, 환경에 대해 배우며, 정신건강의 증진을 가져오기도 한다. 놀이 행동은 거의 모든 포유류에서 나타나고, 새에서는 까마귀과와 앵무새, 코뿔새 등 몇몇 분류군에서 관찰된다. 동물이 논다는 것은 그들의 심리 및 생리 상태가 양호하다는 인자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사육시설의 질을 평가하는 데에도 쓰이고 있다.


DMZ에서 헤엄을 치며 놀고 있는 고라니 (경향DB)


그렇다. 소위 노는 땅이라는 곳에서 동물들은 실제로 놀고 있을 것이다. 놀기만 하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밥도 먹고, 보금자리도 찾고, 짝짓기도 하고, 잠도 잘 것이다. 중요한 건, 노는 행위조차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이 돌아가는 방식 중 하나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건, 비유적인 의미에서건 마찬가지다. 인간이 지은 구조물이 없다고 해서 땅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보통 그렇게 불리는 땅은 여지없이 자연이 조용히 돌아와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잠시 잊은 틈을 타서 동식물이 소박하게 이사를 와있는 공간이다.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머지않아 훌륭한 숲이나 습지가 될 수도 있다. 인간에 의해 변형된 곳에 간섭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자연이 스스로 야생의 모습을 되찾도록 하는 것을 영어로 ‘rewilding’이라 한다. 마땅한 번역어가 무엇인지 난 아직 못 찾고 있다. 이름이야 아무래도 좋다. 자연이 팽팽 놀고 있든, 열심히 일하고 있든, 우리 인간이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조용히 지켜보는 자세만 있으면 족하리라. 노는 땅은 없다. 야생학교는 외친다.



김산하 | 영장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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