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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돌아보며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나는 틈틈이 공원에서 산책을 즐긴다. 마음 같아선 이야기책에 나오는 예쁘고 작은 오솔길이나 탁 트인 들판에 나가 홀로 호젓하게 걷고 싶지만, 도시에 살면서 내 구미에 딱 맞는 자연을 찾기란 지나친 욕심이다. 이 빌딩 천지에 간간이 주어진 녹지라도 사실 감지덕지다. 어떻게 이 땅만큼은 시멘트로 숨구멍이 막히지 않을 수 있었는지, 때로는 신기해하며 천천히 한 걸음씩 옮겨본다.


오늘 난 뭘 잘하고 뭘 못했더라…. 그런데 정신 집중이 잘되질 않는다. 복잡한 인간사를 피해 찾아온 곳인데 생각만큼 충분한 피난처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원이란 단지 건물이 없는 공간이 아니라, 인공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야생의 자연을 얼마라도 대표하는 곳이라야 한다. 쫓기고 쫓겨 마지막 살 곳을 찾아 모여든 도시의 여러 동물, 제아무리 꽃가루를 휘날려도 작은 종자 하나 뿌리 내릴 곳 없어 허탈한 도시의 여러 식물이 잠시라도 쉬어갈 곳, 그런 곳이 공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곳이라야 공원을 찾는 우리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얼핏 보면 나무도 많고, 풀도 많고 멀쩡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야생학교에 다니는 이의 눈에는 도시의 마지막 남은 이 녹색 무인도들이 못내 안타깝고 슬프기만 하다.


(경향DB)


자연이 있어야 할 공원이지만, 흙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둔 곳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다. 보행자 배려와 관리의 편의를 위해 이곳마저 다양한 포장 자재로 덮여버린다. 도시에서 자연은 절대로 ‘생얼’을 드러낼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식물이 싹을 트거나 동물이 굴을 파기 어려워지는 건 물론이요, 빗물이 내려도 골고루 적시지 못하고 배수로를 따라 빠져나간다. 많은 공원은 원래 있던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일단 갈아엎은 다음에 새로 심어서 나무가 작고 그늘이 적다. 다분히 인간 중심의 조경으로 인해 곤충이나 여러 무척추동물의 먹이가 될 만한 초본식물도 마찬가지로 희귀하다. 은신처로 삼을 만한 곳이 적은 것은 당연지사. 그나마 나무라도 몇 그루 심어져 있으면 다행이다. 공원의 큼지막한 부분에 온갖 괴상한 모양의 운동기구가 설치되는 것도 예사이다. 이런 기구는 헬스장에 있어도 되지 않냐는 말은 통하지도 않는다. 반드시 나무그늘 아래, 금쪽같은 녹지의 면적까지 빼앗아 가면서 있어야 한다. 사실 공원을 오로지 운동의 공간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파워 워킹에서 뒤로 걷는 사람까지, 손뼉치며 가는 이에서 배를 두들기며 행진하는 이까지, 요란한 동작의 행렬이 공원을 수놓는다. 아니 힘차게 걷는 것조차 잘못이냐고? 그 소리에 놀라 공원을 떠나야 하는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 있다. 우리가 싫든 좋든 대부분의 동물은 조심스럽고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보행로를 벗어나 도토리나 은행을 줍지 말라고 당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가장 깊은 슬픔을 자아내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다. 바로 공원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말없는 살육, 그리고 이에 대한 사람들의 익숙함이다. 음침한 푸른빛의 형광등으로 곤충을 유인해서 전기로 죽이는 기계는 요즘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주기적으로 틱, 틱, 하는 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알리는 이 흉측한 기계 밑에는 다양한 곤충의 사체가 덩그러니 널린다. 물론 모기와 같은 소위 ‘해충’을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것이다. 심지어는 우리 공원에는 왜 안 세워 주냐고 민원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퍼런 사형장 덕분에 모기로부터 자유로워진 이는 아무도 없으며, 이것이 모기만 골라 죽이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나방과 하루살이까지 무더기로 희생됨으로써 새나 박쥐 등 다른 동물의 먹잇감만 감소시킬 뿐이다. 공원의 생물다양성이 감소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다. 공원에 누가 사는지조차 우리 인간이 결정할 것인가. 당신은 모기 안 죽이고 삽니까? 당연히 예상되는 첫 질문이다. 물론 죽인다. 사실 열대지방에서 오래 산 덕분에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모기 사냥 실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연은 모기의 집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나는 인정한다. 내 허벅지에 앉은 놈을 잡는 것과, 이들과 여러 곤충 이웃을 지속적으로 죽이는 장치를 그들의 집에 설치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잠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공원의 산책로에서 자연이 죽는 소리가 들려서는 안된다. 야생학교는 말하고 싶다.



김산하|영장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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