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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탈 때 많이들 심심풀이로 보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행인에게 장난을 치고 그 반응을 몰래카메라로 보는 내용이다. 가령 길을 묻고선 알려준 방향 정반대로 가는 식이다. 사람들이 놀라거나 당황하는 반응이 계속 반복되는데도 시청자들은 이를 즐긴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순진하고 어리둥절해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인간적인 모습이라고나 할까?


누군가 실수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몸이 다칠 정도가 아니라면, 친구가 넘어질 때 우리는 하나같이 깔깔댄다. 사실 생각해보면 넘어지는 것 자체가 그렇게 재미날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실수는 언제나 사람들의 웃음을 유발하고 때로는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준다. 냉철한 줄만 알았던 이가 예기치 못한 실수로 ‘인간적인 면’을 보여줄 때 우리는 그를 더 좋아하게 된다. 뭔가 순수하고 불완전한 면을 우리는 인간적이라고 느끼는 모양이다. 위에서 말한 코미디 프로에서 행인들이 전혀 놀라지 않고 상황에 완벽하게 대처했다면 재미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적당히 당황해할 만한 때에도 흔들림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오히려 비인간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뛰어난 이성과 고도의 기술이야말로 우리 인간만의 특징인데, 굳이 그런 어리석은 면을 콕 집어 인간적이라고 부르는 사실이 말이다. 동시에 동물적이라는 수식어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쓰인다. 욕설이나 비방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게 동물이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인간으로서 어떤 경우든 동물에 빗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예의나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은 ‘짐승 같은’ 짓이며, 우리의 고결한 ‘인간성’은 저열한 ‘동물성’과 확연히 구분되는 무엇이다. 인간성이 좋다는 건 최고의 칭찬이고, 동물만도 못하다는 건 최악의 욕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토록 (비)인간적인 동물은 과연 어떤가? 이들이 우리처럼 인간적인 면모를 보일 때는 없는가? 야생의 생존경쟁 속에서 사는 이들은 우리와는 달리 전혀 어설퍼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완벽히 적응한 것처럼 보인다. 한번의 실수가 생사를 가르기도 하는 생활 때문일까? 인간적인 우리는 길을 가다가도 넘어지지만, 동물은 매 순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험난한 먹이그물 속에 살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참 비인간적인 녀석들이다.


꼭 그럴까? 얼마 전 호주의 남동부에 있는 한 국유림에서 수십그루의 나무가 잘렸다. 목재 생산을 목적으로 조성된 숲이라 벌채가 예정되어 있었고 당국은 작업에 앞서 그곳의 야생동물을 인근 숲으로 옮겨주었다. 그런데 나무가 다 사라진 며칠 후 그 빈자리에서 코알라 한 마리가 발견되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으로 이 갑작스러운 허허벌판에 몇 시간째 앉아 있었던 것이다. 동물구호단체에 의해 이 코알라는 다른 숲으로 옮겨졌지만, 삽시간에 사라진 보금자리를 바라보던 그 멍한 얼굴은 나의 가슴을 후벼판다. 자동차 위에 그 소중한 알을 낳는 잠자리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하늘을 비추는 보닛이 물의 수면인 줄 아는 거다.


망연자실한 코알라 (구글)


좀처럼 잘 안 보여주는 동물들의 이런 ‘약한 모습’을 목격하고 나면, 그 ‘인간적인 면’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다리가 엉켜 넘어지는 모기와 착지를 잘 못해 구르는 파리를 본 적이 있다. 이들에게 우리와 똑같은 실수를 하는 귀여운 모습이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도 물론 보았다. 원숭이들은 걷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그러면 마치 창피한 듯 얼른 일어나 주변을 살핀다. 


또 아마존 밀림의 어느 부족 마을에서 아나콘다를 만난 적이 있다. 뱀의 머리에 피 빨아먹는 진드기가 붙어있어 떼어주었더니 아나콘다가 움찔거렸다. 따끔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냉혈동물이 보여준 가슴 뭉클한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동물들이 이렇다면, 굳이 ‘인간적’이란 말이 필요할까. 인간다움과 동물다움의 구분 대신, 그 모두를 아우르는 ‘자연스러움’이 답이 아닐까, 야생학교는 제안한다.


(연합뉴스)



김산하 | 영장류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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