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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전남대 교수·철학 oudeis76@gmail.com

얼마 전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향해 구호물자를 싣고 가던 선박을 이스라엘군이 공격해서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최소 19명이나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수십년 동안 계속되는 이스라엘의 야만을 볼 때마다 나는 부당한 폭력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곱씹게 된다.

무슨 말이냐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그토록 집요하게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까닭은 그들이 아우슈비츠에서 나치 독일의 야만적 폭력에 저항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30년 전 광주 시민들이 계엄군의 폭력에 맞서 목숨을 걸고 저항했듯 나치 독일의 폭력에 저항할 수 있었더라면 지금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그렇게 야만적인 폭력을 무시로 행사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부당한 폭력에 저항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부당한 폭력에 저항할 수 있음을 안다. 하지만 부당한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끝까지 당하기만 했던 사람은 남들이 자신의 부당한 폭력에 저항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폭력을 가하면 자기처럼 굴종하리라 생각한다.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낳아

그리고 더 나쁜 것은, 자기보다 강한 자의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폭력도 일종의 힘으로 관성의 법칙을 따른다. 그리하여 저항을 통해 멈추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계속 이어져 다른 곳으로 전달된다. 나치의 폭력에 유대인들이 저항하지 못했으니, 그 폭력은 멈추지 않고 다시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평화를 진심으로 염원하는 사람이라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에 연대하는 것이 하나의 도덕적 의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는 누구든 타인의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내맡겨져 있는 단계가 있다. 저항하고 싶어도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 부모의 폭력이나 교사의 폭력 앞에서 어린이는 저항하고 싶어도 저항할 수 없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부도덕한 일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린이는 부모와 교사의 폭력 앞에 저항할 수 없는 상태, 전적인 무기력 상태에 놓여 있다.

하지만 집에서는 부모에게, 학교에서는 교사에게 무방비 상태에서 얻어맞는 학생은 대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폭력을 가하듯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자기가 받은 폭력을 보상받으려 한다. 희생자는 자기의 동생일 수도 있고 학교의 후배나 동급생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아이가 어른이 되면 다시 자기 자식이나 가난한 이웃집 어린이가 폭력의 대상이 될 것이다. 어디서든 저항을 통해 부당한 폭력을 멈추게 하지 않으면 폭력은 다른 폭력을 낳으면서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이 과정이 계속되면 전 사회적으로 폭력의 총량은 증폭되고 세상은 점점 더 지옥을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학교 체벌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린 것은 백번 잘한 일이다. 이 조치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체벌이 없으면 학교가 통제 불능의 무질서 상태에 빠진다고 비판한다.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하지만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폭력 없이 평화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고 이를 통해 자율적인 질서를 수립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학교 교육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다. 대화와 설득이 아니라 오로지 강제와 폭력으로 학생들을 통제하는 교사들을 보고 자란 학생들이 어른이 되면, 그들도 배운 것이 그것뿐이니 다시 힘으로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지 않겠는가.

공식적으로는 군대에서도 금지된 폭력이 학교에서 금지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까닭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국의 교사들 자신이 품행이 방정한 모범생으로서 사범대학 시절부터 윗사람에게 공손하고 예의바른 처신만을 강요받았던 까닭에 함석헌이 말한 ‘저항하는 인간’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한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교장이든 선배 교사든 상급자의 부당한 모욕이나 유·무형의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교사는 반드시 저항할 수 없는 약자인 학생들에게 그 폭력을 전가하게 된다. 그러므로 먼저 교사들 자신이 부당한 모욕과 폭력에 저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만약 그것이 어렵다면 간곡히 권하노니, 적어도 수업시간에는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쓰도록 하시라. 존댓말을 하면서 주먹을 쓰거나 상소리를 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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