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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 유아교육과 김승희 교수(seuhkim@gwangju.ac.kr)


얼마 전 영광에 있는 한 필리핀 여성결혼이민자들의 모임에 참석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모여 그간의 안부도 묻고 정보도 주고받으면서 이국 생활의 고단함을 달래는 모임이었습니다. 남편의 허락을 얻어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고향 사람들을 만난 그들은 오랜만에 만나 마음껏 모국어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에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연령은 생후 2개월부터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다양했다.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속에서도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누군가가 갖다 놓은 옷가지들을 서로 나눠 가지면서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은 주로 자녀 양육의 어려움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본인들이 자녀들의 숙제를 봐 줄 수 없어 자녀의 학업 성적이 저조한 것에 많이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국어와 사회 같은 경우는 거의 손을 댈 수가 없어 학교에서 다른 한국 아이들과 비교해 현저히 성적이 떨어진다는 것이죠.
도시의 문화생활과 동떨어져 있는 시골에서 아이들의 경우는, 학원이나 방과 후 학습이 원활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그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주로 초등학교 자녀를 두고 있는 그들로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 자녀들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나타날 여러 문제점들을 우려한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 날 모임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필리핀 사람들의 자식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그리고 기대가 남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모인 사람들의 일부는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짓고, 일부는 학교의 방과 후 영어 선생이나 굴비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일을 하고는 싶으나 아직 아이가 어려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구하는 중이라고 하고요.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아원에 맡기고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당연히 아이들은 자신이 직접 키우고 애들이 다 큰 다음에 학교에 보낸다고 했습니다.
필리핀에서도 보통 만 5세 정도까지는 집에서 엄마가 직접 키우고 만약에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한다고 합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가난해도 아이를 키우고 일을 나간다고 하네요. 불가피하게 아이를 맡기는 경우에도, 아이가 유아교육기관에 가 있는 시간 동안에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고 아이가 집에 오는 시간에는 반드시 집에서 아이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즉 대부분의 여성결혼이민자들은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고 일자리 갖고 싶어하면서도, 자녀 양육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삶의 방식에 대해, 그네들도 그렇게 커 왔고 어릴 때부터 봐 온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하다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다른 여성 결혼이민자들과 달리 필리핀에서 온 여성들은 영어를 사용하고, 지금 한국의 학교나 학원에서 원어민 선생에 대한 요구가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자리를 얻기가 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일 대신 아이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소 충격적인 일이었다.

더구나 단순히 경제적 이유를 앞세워 아이를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게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 한국의 상황을 떠올릴 때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었습니다.
돈이 있어야 자식을 키우고 돈을 버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자식과의 상호 작용이나 자식에 대한 책임감을 뒷전으로 두는 많은 한국의 부모들에게 정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지켜야 하고 간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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