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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족을 만나 자녀교육에서 바라는 바를 물어보면 하나같이 얘기하는 것이 이중 언어교육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정책입니다.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쓰는 부모들의 경우, 그들이 자신의 모국어로 자녀와 의사소통하기를 원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바람이자 반드시 해결되어져야 할 과제 중의 하나인데요. 

문제는 이중 언어교육에 대한 지원과 정책이 많은 사회적 비용과 시간을 요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8년 동안 유학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다문화가족들을 접할 기회를 가졌었는데요. 다인종, 다민족으로 형성된 미국에서도 이중 언어교육 문제는 시급하게 풀어야 과제 중의 하나로서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사이의 사용 언어 차이에서 오는 문제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 내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가족 내의 많은 갈등과 고민이 해소되지 않은 채 사회적 문제로 표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에서 한국어를 이해하고 사용할 줄 아는 아이는 찾아 볼 수가 없었으며, 한국인 어머니와 아이들은 아주 기본적인 생활 영어로 대화를 유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한국인 어머니는 물론 아이들의 영어를 대부분 이해하고 알아들었지만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의 영어에 턱없이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부모가 다 한국인이고 아이가 미국에서 자란 경우에도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요, 왜냐하면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영어가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부모가 미국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지 않아 학교생활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없는 경우에는 대화의 소재가 더욱더 단편적일 수밖에 없고, 아이가 모르는 것을 부모에게 물어도 해결이 되지 않는 상황이 자주 생기면서 아예 대화가 끊기기도 합니다. 





결국 아이는 부모의 능력에 대한 불신이 생기며, 부모로부터 얻을 수 있는 고유의 문화유산이나 생활방식에 대한 부정, 정체성의 혼란 등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부모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인간관계 증진 기술 등을 터득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적응력도 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죠. 
급기야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인한 낮은 학업 성취도, 높은 중도 탈락률이 현재 미국에서 지표로 나타나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막대한 예산이 집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위와 같은 현실이 현재 한국에서도 똑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부모 중 하나가 외국인인 국제결혼가정, 이주노동자가정, 북한이탈주민가정 등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모든 다문화가족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즉 많은 경우 미숙한 한국어 실력으로 부모들은 자녀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한국에서 학교생활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숙제나 공부 지도를 해 줄 수도 없습니다. 

설령 한국어가 능통하다 해도 한국어 쓰기나 교과서에 언급되는 용어 하나하나까지 이해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자녀 교육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이 어머니나 아버지의 친척들과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인데요. 
가끔씩 모국을 방문해도 아이가 친척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하여 겉도는 것을 보면 빨리 모국어를 가르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자신이 나서서 가르치게 되지도 않고 아이도 배우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 다문화가족 부모들의 얘기입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지 말과 글을 배우고 익힌다는 차원을 넘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생활방식, 사고방식 등을 배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나라 사람이 생각하고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공감해야만 그 나라의 말과 글을 습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생활 속에서 그 나라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과정에 몸과 마음으로 익히는 것이 언어이며, 이것이 언어를 배우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되겠죠.   

그러므로 다문화가족 자녀가 어머니나 아버지 나라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지 부모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뿐만 아니라 부모 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바로 자신의 뿌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는 것으로 연결되며 자신의 정체성 확립에도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쳐, 건전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현재 몇 개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는 중국어와 베트남 이중 언어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홍보가 미흡하여, 알고 있더라도 시간과 거리의 제약으로 인해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중 언어교육의 필요성과 목적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정책으로 이중 언어교육의 확대가 시급히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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