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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배 여성은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열심히 하겠습니다!” 외치는 듯 보인다. 온몸의 근육은 긴장되어 있고, 목소리는 무엇인가를 주장하듯 힘이 실려 있다. 실제로 일을 맡으면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며, 임무를 완수한 후에는 미진함을 느끼며 안타까워한다. 자주 근육 통증에 시달리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또다시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혼신의 힘을 기울이듯 살다가 한 번씩 신체 에너지가 방전되는 상황을 맞는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까? 그녀는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와 대화하는 일에도 온 힘을 기울여 남자가 부담스러워하며 뒷걸음질치게 만들었다.


삶이 힘들다고 호소하는 젊은이들을 드물지 않게 만난다. 그런 이들은 부모 마음에 들기 위해 지나치게 애써야 했던 성장기를 보낸 경우가 많다. 엄마의 집안일을 거들고, 아버지를 대신해 가정을 짊어지려 하고, 돈을 벌어 부모님을 호강시켜드리겠다고 다짐한다. 그런 이들의 내면에는 자기가 가정에 필요한 존재인지, 부모에게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는 마음이 있다. 부모가 주는 사랑이 불공정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조건에 좌우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사랑받는 자식이 되기 위해 애쓴다. 그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직장이나 친밀한 관계에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남들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두세 배쯤 많은 신심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셈이다.


삶이 힘들다고 느껴진다는 것은 생의 목표가 잘못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사실 우리가 성장하면서 품는 꿈의 성격은 둘 중 한 가지일 것이다. 부모의 소망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거나, 결핍되어 있다고 느꼈던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타인의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구, 콤플렉스를 만회하려는 의지가 그대로 꿈이 되기도 한다. 불행한 것은 외부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삶의 목표는 아무리 성취해도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가끔 생의 목표를 성취한 후 슬럼프에 빠지는 사람들을 목격한다. 그들은 일시적으로 꿈이 없어졌기 때문에 방향을 잃은 게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실망했기 때문에 힘없이 주저앉은 게 아닐까 싶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목표에 도달했지만 원했던 사랑이나 인정은 쏟아져 들어오지 않는다. 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구멍이 채워지지 않자 오히려 그 구멍에 삼켜지고 만 것이다. 그런 이들은 지금이라도 자신의 재능이나 삶의 소명을 점검해보면 좋을 것이다.


삶이 힘들다고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넘어서지 못한 의존성의 문제와 관련 있다.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지나치게 애쓴 이들은 당연히 부모에게 의존하고 싶은 욕구가 충분히 충족되지 못한 상태이다. 힘있고 다정한 어른이 자기를 보호해주고 자기 삶을 이끌어가주기 바라는 마음이 내면에 남아 있다. 그런 이들은 좋은 부모 환상을 충족시켜줄 연장자를 찾아다닌다. 자기를 사랑하고 지지해줄 것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에게 헌신하면서 그의 마음에 들려고 노력한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이들이 사회적 관계에서도 친밀감이나 사랑을 기대한다는 점이다. 비즈니스 상대가 다정하게 대해주기를 원하고, 부장님이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어떤 이들은 사회적 태도에 깃든 객관성, 거리감에서도 박해감을 느낀다. “부장님이 저를 미워하는 것 같아요.” 저 문장은 젊은 직장 여성에게서 자주 듣는 호소이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답해준다. “부장님은 자기 문제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서 여러분을 미워할 여유가 없어요.” 의존성을 넘어서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할 때 심리적 불편을 많이 겪는다. 자신이 엉뚱한 대상에게 당치도 않은 것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실감으로 고통받는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출처: 경향DB)

▲ 입시에 치여 삶에 대해 배운 적 없는 젊은이들

주변 현실이 힘든지, 감당하기 힘든지 구분해 보길


삶이 힘들다고 느끼는 마지막 이유는 생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은 인생이 본래 아름답고 행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생에 대한 근거 없는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 현실의 삶이 상대적으로 초라하고 견디기 힘들게 느껴진다. 백마 탄 왕자가 없는 것처럼 단언컨대,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이란 없다. 누구의 삶이나 그 속살을 열어보면 피를 철철 흘리고 있다는 게 생의 첫 번째 조건이다. 생에 대한 환상이 많은 이들은 타인의 성취에 대해서도 시기하는 마음을 먼저 일으킨다. 타인들의 성취 뒤에는 무수히 많은 좌절과 인내,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은 볼 줄 모른 채 겉으로 드러나는 좋은 면만 부러워한다. 어떤 이는 다짜고짜 “그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한다. 시기심에서 오는 고통은 마치 자기 것을 빼앗긴 양 절절하다.


그런 이들이 현실의 고통을 피해 즐겨 숨는 곳은 환상이다. 환상 속에서 꿈꾸는 모든 삶을 누린다. 하지만 환상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만 허용되는 생존법이다. 성장기의 약한 자아가 현실의 냉혹한 모서리에 부딪쳐 피를 흘리지 않도록, 환상은 어린 자아를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어딘가에 다정한 엄마, 행복한 가정이 있을 거라는 꿈을 꾸면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넘어간다. 성인이 되면 현실의 날카로운 모서리와 직면해야 한다. 모서리에 부딪쳐 이마가 깨어지고, 벽에 부딪쳐 찰과상을 입으면서 현실의 삶을 배워나간다. 넘어지고 부서질 때마다 냉철하게 현실을 인식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주저앉아 힘들다고 탄식할 게 아니라.


우리 젊은이들은 성장기 내내 대학 입시를 준비하느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삶의 주도권을 자기 손에 쥐고 스스로 자기 인생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인식도 없어 보인다. 그리하여 성인으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에 이르면 총체적 난국에 처하는 듯하다. 배운 적 없고 준비하지 않은 어른의 삶을 살려니 매사에 힘들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젊음은 본래 혼돈과 미숙함의 시기여서 가만히 있어도 삶이 어렵다. 불안감이 많은 기성 세대는 젊은이들을 믿고 지지해줄 줄 모른다. 객관적으로 사회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 거기에는 명백히 두 차원이 있다. 객관적인 상황이 힘든지, 마음 깊은 곳에서 자기 삶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끼는지. 두 가지를 구분할 줄만 알아도 삶이 조금 수월해질 것이다.


김형경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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