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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지방 국립대학 학생들의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한 일이 있다. 산업공학을 전공한다는 그 학생들은 메일, 전화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청탁했고, 강의를 수락하자 자기들의 고민과 질문을 미리 메일로 보내왔다. 메일은 다섯 통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문제가 많다. 아버지에게 받았던 상처를 기억하고 분노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아버지 역할을 강요했으며, 그래서 항상 아버지와 마찰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입장 따위는 고려해보지 않았다. 내 아버지는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살아야 했으며, 그래야 내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강연 이튿날 다른 학생이 메일로 비슷한 질문을 보내왔다.


“제게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저를 이끌어주시는 교수님의 말을 들을 때에도 항상 걸러서 듣는다는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분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만의 길을 가겠어. 교수님은 이건 틀려’라는 목소리가 내면에서 들립니다. 그래서 제가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그토록 진지하게 정신적 성장과 내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강의 주제는 자기 정체성 개념과 그 형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자기 정체성은 1959년에 에릭 에릭슨이 처음 제안한 용어이다. 프로이트 시대의 인간은 억압된 욕망으로 인해 고통받았지만 현대인에게 욕망은 거의 무한대로 충족된다. 대신 현대인들은 생존의 느낌 결핍으로 힘들어한다. 열심히 일하지만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일을 끝내도 성취감이나 만족감이 없다. 항상 내면이 텅 빈 느낌이며 사랑과 분노, 조증과 울증이 급격히 반복되는 정서적 롤러코스터에 시달린다. 자기만의 정체성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체성은 사춘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해 25세 무렵에 완성되는 정신 기능이다. 그 기간 동안 인간은 아동에서 성인으로, 개인에서 사회적 존재로 변화해간다. 부모에게서 심리적으로 독립하여 고유한 자기 개념과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간다. 시간이 흘러도 동일하게 유지되는 자기 개념, 다양한 정서들을 균형 있게 체험할 수 있는 능력, 활기차고 의미 있는 삶을 느끼는 능력 등이 거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그것을 형성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유로는 산업화로 인한 공동체 해체를 가장 먼저 꼽는다. 공동체가 제공해주던 삶의 비전, 지혜 등을 상실한 채 도시의 허허벌판에서 홀로 자기 삶의 명분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이 쉽지 않다.


정체성 형성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양육환경의 변화이다. 핵가족 사회에서 부모와 긴밀하게 관계 맺으며 자라는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정서적 침해를 당하기도 쉬워진다. 그런 환경에서 젊은이들은 자기만의 정체성을 형성하기를 포기한다. 권위적이고 지배하는 부모에게 삶의 주도권을 내어주고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순응 유형이 있다. 반대로 매사에 부모에게 반항하면서 서둘러 자기 삶을 찾아 떠나는 반발 유형이 있다. 그들은 권위에 도전하면서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워한다. 글 앞머리에 질문한 두 청년이 겪는 어려움이 이 범주에 속한다.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하는 세 번째 유형은 자기를 분산시키는 경우이다. 그들은 생에 대한 질문 없이, 열정이나 기대 없이, 어떤 역할도 맡기 싫어하면서 살아간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 정체성 형성이 어려워진 사회현실 속

젊은이들의 진지한 자기성찰에 감동


학생들이 미리 보낸 질문 메일에는 두 교수의 내면 이야기가 있었다. 그들은 학생들 앞에서 자기 내면의 불안감과 시기심에 대해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학생들은 존경하는 교수님들 속에도 자기들과 똑같이 어쩔 줄 몰라하는 내면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눈빛이었다. 아마도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학생들은 교수들의 내면 이야기를 경청한 것이 어떤 교훈보다 값지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연전에 한 20대 여성이 부모 세대 여성들이 속내 이야기를 토로하는 자리에 끼어 앉아 있었던 경험에 대해 들려준 적이 있다.


“충격이었어요. 내가 못 받았다고 느꼈던 사랑을, 그들도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그들도 사랑받지 못했다고 분노하면서 사랑을 줄 줄도 모르고, 심지어 자기 내면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고 있었어요. 대체 누구에게 무엇을 기대했던 건가 싶었어요.”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가 자기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자주 의심한다. 부모에게서 받은 한두 가지 상처에 의식이 집중되어 있어, 자식을 보살피면서 염려한 그 긴 세월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부모 세대 역시 물려받은 상처가 있어 어쩔 줄 모르는 채로 고통 속에 살아왔다는 사실을 짐작하지 못한다. 그들도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해서 자녀에게 사랑이라고 내미는 것이 이상한 모습을 띠기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요즈음 들어 심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면서 기성세대들은 자기들이 부모 역할에서 범한 잘못을 알아차리고 있다. 미안하고 다급한 마음에 서둘러 자녀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아직 부모를 이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젊은이들은 그 일방적인 태도에 당황한다.


“아빠가 갑자기 ‘우리 딸 사랑해’ 하면서 하트까지 넣어 문자를 보냈어요. 이제 와 왜 그러는 거죠? 그냥 하던 대로 하지….”


“엄마는 나한테 사과한다고 말하지만 그 말투는 여전히 위압적으로 명령하는 방식이고, 엄마 생각을 강요하는 것일 뿐이죠.”


이제 내면을 이해하고 소통하기 시작했으니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이미 자기 내면의 잘못된 신념을 알아차리는 젊은이들도 있다. 맨 앞의 글에서 질문했던 학생은 아버지를 심판한다는 내용을 쓴 후 곧이어 자기를 성찰해냈다. “글을 적어 놓고 보니 참 문제가 많은 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내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요구했으니, 아버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두 번째 인용문의 학생도 어른을 존경해본 적이 없다고 쓰면서 자신의 모습 한 가지를 통찰해냈다. “헉, 글을 쓰면서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는데, 저 역시 그 학우처럼 아버지를 심판의 눈길로 바라보며 반발하는 모습이군요.” 학생들은 이제부터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형성해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만 해나간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도 괜찮을 것이다.


김형경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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