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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배 여성은 서른 다섯 살이 되는 새해에 회사에 사표 내고, 남자 친구와도 헤어진 후 외국 여행을 떠났다. 첫 목적지는 알래스카였다. 성장기에 꿈꾸던 알래스카 설원을 밟은 다음 아메리카 대륙을 남으로 횡단하리라 계획했다. 나는 여행 떠나는 그녀를 격려했다. 이별에 따른 애도 작업도, 중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도 필요해 보였다.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면 중년기 이후의 삶을 건강하게 펼쳐나갈 거라 기대했다.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외국에서 5년을 살았다. 처음에는 알래스카 설원이나 뉴욕 뒷골목 사진에 안부를 적어 보냈다. 남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이 한 땀 한 땀 엮어 만든 공예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미의 한 나라에 멈추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곳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것 같았지만 얼마 전, 마흔 살이 되는 새해에 귀국하여 안부를 전할 때까지 그녀는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낯선 문화에 몸을 담근 채 4년 이상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외부 세계에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귀국하여 만났을 때 그녀는 이국 땅에서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매일 내 손으로 상을 차리고, 나를 먹이곤 하는 일이 의미 있었다. 가족에게 돌아가면 이렇게 엄마에게 상도 차려드리고, 엄마한테 잘 해드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여행 떠나기 전 그녀는 엄마에게 화를 많이 내는 딸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녀가 스스로 성취했다고 여기는 것 위로 재를 뿌리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냉정한 진실을 건넸다. 아무리 멀리 떠나 있어도, 예전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을 거라고. 며칠 후 그녀는 근황을 전했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마음이 불편해지고, 한밤에 혼자 목놓아 우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후배들 중에는 삶이라는 커다란 울타리 바깥에서 서성이면서 시간을 다 보내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있다. 외국을 여행하다보면 낯선 땅에 2, 3년씩 머무르면서 일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이들을 더러 만난다. 몸은 국내에 있지만 외국을 떠도는 사람처럼 생을 흘려보내는 젊은이들을 더 자주 맞닥뜨린다. 그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생에서 확보하지 못한 기능이 비단 의존성을 끊는 문제만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들은 세 가지 개념을 충분히 내면화시키지 못한 듯 보인다. 자립, 자율, 자유.


자립은 유아기적 심리적 의존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이 도달해야 하는 목표이다. 그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자기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부모에게 잘 해드리고 싶어하고, 엄마에게 집을 사드리거나 아버지 자동차를 바꿔드리고자 한다. 그렇게 하면 예전에 못 받았다고 느끼는 사랑을 지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어린 시절에 못 받은 사랑은 어디서 받아내야 하나요?”라고 질문하는 여성도 있다. 그런 이들은 환갑이 될 때까지도 자기 인생을 살기보다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 자녀들과 상호 의존 관계에 있는 부모 역시 내면에 결핍의 구멍을 가진, 만족할 줄 모르는 이들이다. 아무리 애써도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하게 될 때까지 헛된 노력을 되풀이할 뿐이다. 어떤 이유로든 부모에 대한 애착이나 분노의 마음을 버리지 못했다면 그것은 심리적으로 자립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 자립·자율·자유 성취 못한 젊은이들

부모 간섭 벗어나려 외국서 떠돌아


자율은 스스로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 자기 삶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실천해나가야 하는 규칙을 스스로 정한다. 삶의 세목들을 행동에 옮기면서 작은 목표들을 성취할 때마다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자존감을 키운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작은 실천과 성취들이 모여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스스로 삶을 운영해나가는 역량을 자율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떤 젊은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누군가가 자기 삶의 실천 항목들을 제시해주기 바란다. 오래도록 학교가 수업 시간표를 만들어주고, 부모가 과외 스케줄을 짜주었기 때문에 성인이 된 후 외부 규칙이 없어지면 일상의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런 이들은 친밀감을 나누는 대상과도 적극적으로 통제 관리하는 관계를 맺는다. 상대가 구속당한다고 느낄 만큼 일일이 간섭하고 통제하면서 상대방도 그렇게 대해주기를 원한다. 컨트롤하는 행위 전체를 사랑이라고 여긴다.


자유는 큰 개념이다. 한 개인의 삶의 문제에 국한하여 말한다면 자기 삶이 온전히 자신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의미를 말한다. 삶은 선택의 문제이며, 그 결과를 마음껏 향유하고 스스로 책임지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일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대외적으로 멋져 보이는 삶을 꿈꾸거나, 세상이 정해둔 틀 속에 자기 삶을 맞추려 노력한다. 삶에 준비되어 있는 여러 요소들을 마음껏 시도하지도, 그 열매를 흠뻑 맛보지도 못한다. 자유를 두려워한다기보다는 책임을 두려워한다는 게 옳을 것이다. 스스로 삶을 책임지기 두려워하면서 내면에 빅 브러더를 초청한다. 누군가 힘 있는 대상이 자기 삶의 최종 관리자가 되어 책임과 승인을 이행해주기 바라며 자유를 반납한다.


젊은이들이 자립, 자율, 자유를 성취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그들 부모 역할이 지대해 보인다. 자식이 자립하려 하면 배은망덕이라며 뒷덜미 잡는 부모, 자식이 자율성을 연습하려 하면 말 안 듣고 제멋대로 군다고 여기는 부모가 있다. 자식이 자유를 향유하려 하면 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느냐며 협박하는 부모도 있다. 외국에서 떠도는 젊은이들을 볼 때면 그들이 혹시 구속하고 간섭하는 부모로부터 멀리 떠난 게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그런 삶 역시 그들의 자유이고, 스스로 책임지면 되지 않느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렇다면 세 가지 항목을 체크해 보아야 한다. 


일, 사랑, 돈의 문제에서 잘 해나가고 있는가. 일은 그가 사회 구성원으로 잘 기능한다는 방증이 된다. 노동으로 돈을 벌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가는 어른이 되었다는 중요한 척도이다. 주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심리적으로 잘 기능한다는 의미이다. 세 가지 측면에 문제가 없다면 어디서 어떻게 살든 당사자의 자유일 뿐이다.


김형경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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