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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충격이 지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던 우울의 시기도 지나가고 있다. 슬픔과 함께 밥을 삼키고 묵직한 감정을 내면에 간직한 채 일상을 영위했다. 모든 기능들이 조금씩 둔화되어 있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말수가 줄어들고 사람 만나는 일을 피하고 싶어졌다. 동년배 여성이 문자를 통해 “이런 시기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몰아치기로 드라마를 시청한다고 했다. 중년 여성의 판타지를 극대화시켜 놓은 드라마를 보면서 그것이 그동안 사용해온 방어기제였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식하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다고 대답했다. 슬픔과 우울감이 몸을 관통해 지나가도록 그냥 있는 것, 그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서른 살짜리 후배 여성은 녹초가 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뉴스를 통해 심신을 흠씬 두들겨 맞은 기분이라고 했다. 그녀는 우리나라가 사회적 경제적으로 웬만큼 안정된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대한민국이 꽤 괜찮은 나라라는 나르시시즘적 국가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만했다. 그랬기에 사건의 원인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그곳에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추악한 이면에 경악했다. 우리나라가 그토록 속속들이 썩어 있다는 사실에, 기성세대가 그토록 미개하고 비겁하며 탐욕스럽다는 데 좌절했다. 그녀는 새롭게 품게 된 어른들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 했다. 나는 그녀에게 우리나라가 겉으로 그럴싸하게 보이는 데 치중하여 해결하지 못한 많은 문제를 덮어둔 채 달려왔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불행한 일이 생기면 우리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묻는다. 가장 손쉽게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은 제도나 시스템일 것이다. 다음에는 조직 책임자나 시스템 작동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보낼 수 있다. 문제의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면 그 일에 대해 느끼는 책임감과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다. 외부에 아무도 비난할 대상이 없으면 우리는 곧잘 운명이나 신까지 끌어다 화를 낸다. 우리도 오래도록 그렇게 해왔다.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책임 소재를 따지고 책임자를 찾아내어 문책하는 데 치중했다.

젊은 세대들도 그런 마음인 듯하다. 우리가 겪는 불행에 대해 기성세대를 비난하고 싶어하는 듯 보인다. 분향소를 다녀온 중년 여성은 노란 리본에 적힌 글에서 젊은이들의 분노를 보고 놀랐다고 했다. 기성세대들이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채 회피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동안 젊은이들은 어른들을 비난하면서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했다. 기성세대들이 제도와 시스템을 문제 삼으면서 미안하다고 말할 때 젊은이들은 그 말을 영혼 없는 사과처럼 느꼈다. 기성세대들이 위로의 말을 건넬 때 젊은이들은 “빈말이라도 따뜻하게 하는 게 낫다”고 믿는 그들의 관행을 떠올리며 마음이 싸늘해졌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 겉만 그럴듯하게 꾸미고 문제 덮어왔던 기성세대
“우리는 괜찮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세대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듯 보인다. 젊은이들은 이제 겉으로 그럴싸하게 보이는 데 치중하면서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신화의 본질을 간파해버렸다. 방금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우리나라가 어떻게 보이는지 묻는 기성세대들의 마음에 깃든 약한 자존감도 알아차렸다. 기성세대가 자기들이 이루어낸 성과에 나르시시즘적으로 도취되어 있었던 진짜 이유도 실은 내면에 숨겨둔 열등감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의 본질을 알아차리고 그들을 부정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일 수 있다. 사실 그동안 그들이 어른들의 신화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일이 더 조심스러워 보였다. 어른들의 세계에 의존하여 안락한 삶을 영위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만들어가려는 의지가 없는 듯 보였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젊은이들이 어른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또 한번 새로운 차원의 변화를 꾀하기 위한 발판이 될지도 모른다. 돌연변이가 자연의 건강을 지켜가듯이.

다만 그 과정에서 젊은이들이 한 가지만 기억해주었으면 싶다. 기성세대들은 여러분이 상상해본 적도 없는 가난과 전쟁과 폭력의 기억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라는 것을. 해결하지 못한 심리적 문제가 당사자의 마음속에서 현재처럼 생생하게 경험되고 있다는 것을. 자기 마음에 대해서조차 무지했던 이유는 고통스러운 내면을 차마 들여다볼 용기가 없어서 그랬다는 것을. 그들의 사과가 빈말처럼 들릴 때는 그들이 미안하다는 말조차 당당하게 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약하다는 사실을. 황무지를 개간하듯 이 나라를 이끌어온 그들의 추진력이 비록 불안과 강박증이었다고 해도, 그들에게도 틀림없이 배울 만한 지혜가 있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이 사실을 꼭 기억했으면 싶다. 그들이 젊은이들에게 주지 못한 배려, 관용, 안전한 환경 등을 그들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경험한 것만을 내면화시켜 자신의 일부로 만들 수 있으며, 내면에 있는 자질만을 타인에게 건네줄 수 있다는 것을.

슬픔과 우울감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현상은 불행 중 다행으로 보인다. 우리가 감정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 안을 만큼 단단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부모 세대가 젊은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게 된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자녀에게 어떻게 나쁜 것을 물려주었는지 세밀하게 알아차리고 개선해나갈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우리가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멋지게 꾸며 놓고 우리가 꽤 괜찮다고 믿어온 나르시시즘적인 도취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우리의 내면에 윤리나 양심 따위가 들어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불안과 결핍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일이다. ‘인재’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그 재난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정신적 심리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상태였다는 의미이다. 그가 이미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거나, 위기의 순간 정신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우선은 제도를 개선하고 시스템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리 사회 구성원이 저마다 심리적으로 건강해지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 우리는 모두 심리적 공범이다.


김형경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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