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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지난 2월 나는 이 시평에서 ‘문재인의 운명, 안철수의 선택’이라는 연속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대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서 문재인 민주당 고문과 안철수 서울대 교수의 선 자리와 갈 길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다. 이유는 간명하다. 여전히 두 사람이 대선으로 가는 길에 야권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변화가 없지는 않았다. 4·11 총선 결과가 문 고문에겐 다소 불리한 정치적 조건을, 안 교수에겐 다소 유리한 정치적 상황을 형성했다. 총선은 진보결집 못지않게 중도통합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이런 국면은 중도층의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은 안 교수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켰기 때문이다.

문 고문은 6월17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문 고문의 슬로건은 ‘보통 사람이 주인인 우리나라 대통령’이다. 이를 위해 그는 정권교체·정치교체·시대교체를 내걸고, 4대 성장전략·경제민주화·강한 복지국가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김두관 경남지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민주당 안에선 문 고문, 김 지사, 손학규 전 대표의 3강 구도가 형성됐지만, 문 고문은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린다. 여기엔 더없이 인간적인 문 고문의 성품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적자(嫡子)라는 그의 정치적 위상이 크게 기여해 왔다.

문 고문이 박근혜 새누리당 전 대표와 대결한다면 현재로선 불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예상되는 대선 구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박정희 대 노무현’의 대결이며, 다른 하나는 ‘보수적 미래 대 진보적 미래’의 대결이다. 문 고문이 대선 후보가 될 경우 ‘민주화된 박정희’에 대응하는 ‘미래지향적 노무현’을 어떻게 제시하고 설득할 것인가가 관건일 것이다. 여기서 미래지향적이란 노무현 정부의 미완의 과제인 양극화 해소와 복지국가 구축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함축한다.

 

문재인과 인철수 그래픽 ㅣ 출처:경향DB

총선 이후 안 교수의 행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선택을 심사숙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안 교수가 봄학기가 진행 중인 6월 말까지 정치 참여를 선언할 수 없었던 것은 책임감을 중시하는 그의 성품을 생각할 때 공감할 수 있는 태도다. 지난해 9월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이사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했듯 그는 여의도식 정치문법의 밖에 존재한다. 유권자들의 피로감이 쌓이곤 있지만, 선택한 것에 철저히 책임지려 하는 안 교수의 태도는 말만 무성한 정치현실에선 외려 신선한 것일 수 있다.

안 교수가 시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는 것은 그의 삶에 있다. 대선 후보에게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게 시대정신이라면, 안철수연구소로 상징되는 혁신·공공성, 청춘콘서트로 상징되는 공감·소통의 삶을 통해 그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앞장 서 실천해 왔다. 최근 홍사덕 박근혜 캠프 선대위원장이 안 교수를 루이 나폴레옹과 비슷하다고 비판한 것은 대선 구도가 지나간 산업화 시대의 적자인 박근혜 대(對) 새로운 미래 시대의 주역인 안철수로 형성될 가능성에 대한 보수 세력의 두려움이 반영돼 있다.

안 교수가 정치 참여를 자신에게 부여된 역사적 소명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선택을 넘어선 이제 운명으로 봐야 한다.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를 넘어선 곳에 중도층과 2030세대를 대변하는 정치적 상징으로서 그는 위치한다. 바로 이 점에서 안 교수가 운명으로서의 정치에 대해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인가, 야권과 어떤 정치적 연대를 모색할 것인가는 올 대선에서 진보개혁 세력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문 고문은 살아남은 자의 책무로서 운명을 넘어선 선택으로 나아갔다. 안 교수는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선택을 넘어선 운명을 수용할 것인가를 고뇌하고 있다. 시간이 안 교수에게 많은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고 그를 지나치게 압박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야권에 중요한 것은 문 고문이 감행한 ‘선택의 운명’과 안 교수가 고뇌하는 ‘운명의 선택’의 생산적 결합이며, 바로 이것이 진보개혁 세력이 승리하는 방정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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