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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총선 이후 보수 우위의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당 지지율, 대선후보 적합도는 물론 이념구도 조사에서도 새누리당이 계속 이니셔티브를 행사하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총선 승리의 효과가 하나라면, ‘통합진보당 사태’가 다른 하나다. 통합진보당 사태와 ‘임수경 의원 사건’을 색깔론으로 몰고 가는 것은 의도가 분명한 과잉대응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이 비례대표 후보 선출의 부정에 있는 만큼 이에 대해 철저히 책임지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경향신문 DB)


정치란 본디 전략, 국면, 구조가 상호 작용하는 공간이다. 예기치 않은 ‘종북 논란’ 국면은 야권연대의 전략적 의의를 훼손시키고, 시대정신 교체라는 대선의 구조적 특징마저 희석시키고 있다. 종북 논란에서 주목할 것은 중도 무당층의 향방이다.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해군기지 건설 논쟁으로 이어지는 안보 국면에서 중도층이 보수적 안보관에 친화력을 느끼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담론의 현주소다. 구조적 시각에서 보면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이른바 ‘새판 짜기’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고, 고용 없는 성장에서 일자리 창출 경제로 전환하며, 무엇보다 수명이 다한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을 개혁해야 할 엄중한 과제를 재벌개혁 및 보편적 복지정책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민주당의 전략은 국민 다수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이런 일련의 흐름이 현재 민주당이 선 자리다.


지난주 월요일 민주당 국회 개원 워크숍이 마련한 강연에서 나는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확실시되는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최대치는 ‘민주적 박정희’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위원장이 경제민주화와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를 양축으로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하는 ‘미래선택’을 강조하더라도 보수적 유권자들이 소망하는 미래는 발전국가 논리에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더한 ‘민주적 박정희 시대’일 것이다. 민주당에 이번 대선이 결코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 전 위원장과의 경쟁은 복지국가를 내건 박근혜 후보와의 경쟁인 동시에 산업화의 주역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을 마친 뒤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경향신문DB)


싸움이 어려울수록 우회해선 안된다. 대선의 본령은 시대정신 제시에 있다. ‘균형발전’을 내세운 2002년 노무현 후보와 ‘경제 살리기’를 앞세운 2007년 이명박 후보를 떠올려 보라. 대선에서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것은 새로운 비전, 새로운 미래, 새로운 대한민국이다.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대정신이며, 민주당 대선후보는 민주주의·균형발전·한반도 평화라는 두 전직 대통령의 시대정신을 안고, 동시에 넘어서야 한다. 어떤 비전으로 ‘민주적 박정희’에 맞설 수 있을지 정직하게 말하면 걱정이 앞선다.


보수의 힘을 과장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강조하려는 것은 과연 어떤 미래비전으로 시민 다수의 열망을 일이관지(一以貫之)할 수 있는가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민주당 후보는 목소리가 없는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게 정치라는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목소리가 없는 사람들, 다시 말해 목소리를 박탈당한 서민들과 목소리를 내지 않는 중도층을 대신해 민주당은 과연 어떤 목소리를 대변할 것인가. 그날 강연에서 나는 대선 승리를 위해 민주당에 요구되는 네 가지 과제를 조언했다. 비전에서 미래를 선점하고, 대선후보 경쟁력을 제고하며, 진보 결집과 중도 통합을 동시에 추구하고, 야권연대를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으로서의 미래비전이다.


지난주 토요일에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를 선출하고 새로운 지도부를 출범시켰다. 이해찬 대표와 김한길 최고위원 등은 여러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온, 진보와 중도를 아우르는 민주당의 정체성에 걸맞은 리더들이다. 새로운 시대정신의 제시라는 민주당의 갈 길에 대한 신임 지도부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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