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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한 달 만에 다시 안철수 교수에 관한 칼럼을 쓰게 됐다. <안철수의 생각> 출간과 <힐링캠프> 출연 이후 안철수 바람이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거세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칼럼들이 쏟아지고, 유력인사들과 여러 조직들이 공개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은 12월 대선으로 가는 길에 이제 그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상수가 된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 현상에 담긴 의미는 과연 뭘까.


 지난해 나는 한 심포지엄에서 안철수 현상을 가리켜 ‘정치사회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격’이라 이름지은 적이 있다. 그들만의 리그인 정치권에 대한 시민 다수의 불만이 ‘안철수’라는 이름에 담긴 소통과 참여의 열망으로 드러난 게 반격의 본질이라는 것이었다. 시민사회는 숨 가쁘게 변화하는데도 정치사회가 이를 쫓아가지 못하는 ‘정치 지체’ 현상이 안철수 현상의 배경을 이룬다. 그 결과 기성 정치를 거부하는 ‘탈정치화’와 새로운 정치를 희구하는 ‘재정치화’라는 상반된 경향이 안철수 현상에 공존한다. 안철수 현상을 이해하는 정치학적 코드다.


(경향신문DB)


어느 대선이든 향방을 결정하는 핵심 이슈는 경제다. 1997년 대선에선 외환위기 극복, 2002년에는 수도 이전으로 상징되는 균형발전, 2007년에는 ‘경제 살리기’가 이를 증거한다. 재벌개혁으로 대변되는 경제민주화가 올 대선에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낙후된 지배구조, 재벌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면, 누가 포스트 신자유주의적(post-neoliberal) 경제민주화의 적임자일까. 여기에 공공성과 혁신을 앞세운 안철수의 기업 경영을 떠올리는 국민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안철수 현상을 이해하는 경제학적 코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문화를 특징짓는 흐름 중 하나는 ‘갈라파고스 현상’이다. 세대 간, 계급 간 문화적 거리가 멀어지고 하위문화의 독립성 및 고립성이 강화돼왔다. 인디문화, B급문화, 사이버문화, 7080문화 등은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이런 문화의 군도화(群島化)가 세계화와 정보사회의 진전 속에 역전불가능하다면, 공감과 통합에 대한 문화적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수사적 담론이 아니라 공감과 통합을 위한 소통의 실천이다. 그리고 이 실천의 주체로 안철수가 존재한다. 안철수 현상을 이해하는 문화학적 코드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소통·참여·공공성·혁신·공감·통합이 안철수 현상의 주요 코드들을 이루고, 이 코드들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미래 가치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대선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과 구도이다. 새누리당 후보 대 민주당 후보로 경쟁할 경우 그 구도가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의 리턴매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면, 새누리당 후보 대 안철수로 경쟁할 경우 그 구도는 ‘과거 대 미래’로 짜일 가능성이 높다. 국면에 따른 지지율의 증감과 무관하게 안철수 현상이 계속 주목받아온, 보수 세력이 안철수를 두려워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안철수가 과연 대선에 나서게 될지는 여전히 예단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의 생각>을 통해 그는 이제 국민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조언과 비판을 듣고 싶다고 했다. 이런 안철수식 방식이 여의도식 문법 또는 정당정치 관행에 익숙한 이들에겐 적잖이 불편할지 모른다. 그러나 소통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안철수로서는 최종 선택을 하기 전에 당연하면서도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지난해부터 안철수 현상을 지켜보며 떠오른 이는 정치사상가 한나 아렌트다. 아렌트는 다양한 의견 개진과 활발한 의사소통이 정치의 생명이라고 주장한다. 안철수 현상은 새로운 게 아니라 아주 오래된 미래, 정치 본래의 의미의 재발견이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 정당정치의 위기이자 새로운 기회다. 안철수 현상이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우리 정치에서 소통과 참여의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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