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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기차를 처음 탄 것은 동대구역에서였다. 방학이면 무조건 거창의 큰댁으로 가서 뛰놀았던 나는 부산~거창을 오고갈 때, 천일여객의 시외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어느 해 여름 한철을 보내고 고향을 떠날 때, 버스표를 구하지 못해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갔다. 내 기억에 그때 아마 처음으로 기차를 탔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언저리의 일이다.
그러고 기차를 여러 번 탔다. 가장 길게 탔던 것은 고등학교 졸업식 마치고 대학교 본고사 시험 치러 서울 갈 때였다. 그때 나는 검정 교복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쓰고 검은 책가방을 들고 소위 상경이라는 것을 했다. 선생님 인솔하에 대학교 시험 치러 가는 친구들과 단체로 기차를 탄 것이다. 서울이 무슨 고원지대도 아닐 텐데 왜 상경(上京)한다고 했을까. 서울은 높은 곳이라서 그곳에 살려면 그만큼 아슬아슬함을 견디라는 암시였을까.
바다를 기고 기차가 달리는 여수의 풍경 (출처; 경향DB)
그 이후 기차를 아주 많이 탔다. 수십 년을 지나온 나의 생애가 제자리에서 그냥 흐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뿐인가. 내 안으로는 몇 개의 터널도 뚫렸고 그 내부로는 숯검댕도 많이 쌓였다. 정거장도 몇 개 생겨났다. 나의 몸도 세월을 감당하면서 방황을 해야 했고 바람을 따라 흔들려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이력이 기차처럼 제법 길어졌을 때. 나의 기억이 석탄을 실어나르는 화물기차 한 칸처럼 어두컴컴해졌을 때. 나는 궁리출판을 세웠다. 그리고 그 이름으로 두 번째로 펴낸 책이 독일의 사회학자 볼프강 쉬벨부쉬의 <철도 여행의 역사>였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으로 하여금 시간과 공간에 대한 미증유의 감각을 체험케 한 것이 바로 기차였다. 이 완강한 쇳덩어리를 타고 인간은 근대를 횡단하면서 도시로 돌진한 것이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거창에서 부산으로 갔다가 다시 기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로 떠난 셈이었다.
전도유망한 시인으로 활약하다가 몇 해 전 입산 출가한 분이 있다. 그 이후 소식은 들을 수 없지만 아마 이제는 한 소식을 접하고 수행에 정진하고 계실까. 출가하기 전 발표한 ‘소화(消化)’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차내 입구가 혼잡하오니/ 다음 손님을 위해서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승객 여러분/ 봄 여름 가을/ 입구에서 서성대고 계시는/ 승객 여러분/ 입구가 몹시 혼잡하오니 조금씩/ 안으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갈 봄 여름 없이/ 가을이 옵니다/ 다음 손님을 위해서 조금씩/ 겨울로 들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정류장은 봄입니다.”
가까운 분의 황망한 부음을 받고 울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표를 구하느라 이런 자리를 배당한 것일까. 좌석번호가 ‘12호차 1B’였다. 기차를 타고 보니 출입구의 바로 첫자리였다. 그간 기차를 많이 타보았지만 이 자리는 처음 앉아보는 곳이었다. 중간의 창가에 앉았다면 아마 바깥 풍경에 마음이 많이 쏠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두리번거리느라 바빴을 것이다. 그러나 첫 칸, 그것도 통로 측에 앉고 보니 나의 귀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입구는 조금 혼잡했다. 뻥 뚫린 귀에도 문(門)이 있었던가. 귀문이 활짝 열린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소리들이 그 문을 통과해 들어왔다.
전남 곡성 섬진강변을 달리는 증기기관차 안에서 매점 손수레를 운영하는 윤재길씨 (출처 :경향DB)
발자국 소리, 겉옷 벗는 소리, 출입문 여닫는 소리. 이음칸에서는 소리의 종류도 다양했다. 사람들 속삭이는 소리, 휴대폰 통화하는 소리, 화장실 문 여는 소리. 그 사소한 틈을 타고 찬 공기가 무시로 밀려들었다. 찬 공기는 나의 뒷덜미를 잡아채면서 자꾸 밖으로 불러내려고 했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면서 미리 예방주사를 맞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봐, 자네 차례가 멀지 않았네. 천천히 나갈 준비를 하게!”
이 자리는 처음 앉아보는 곳이었다. 앉았다기보다는 대기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자리였다. 앉은 자리에서 앞으로 나란한 좌석들을 보았다. 두더지처럼 승객들의 머리가 불룩불룩 솟아있었다. 잠깐 일어나 탁자가 구비된 동반석에 앉아가는 4인의 핵가족을 보았다. 젊은 부부는 까닥까닥 졸고 아이 둘이 새우깡과 초콜릿을 먹고 있었다. 귤 껍질도 흩어져 있었다.
나도 처음 기차를 탔을 땐 저 중앙 언저리의 자리였던 것 같았다. 이젠 차츰차츰 밀려나 오늘은 맨 가장자리가 내 자리였다. 출입문이 하나의 경계가 되고 나는 언젠가 이 실내에서 나가 이음칸에서 서성거리다가 저기 바깥 풍경에 꽂혀야 한다는 암시일까. 이 차에도 정원이 있고 나는 다음 손님을 위해서 겨울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윽고 우리 열차는 곧 울산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속도를 조금 낮추었지만 기차는 계속 덜컹거렸다. 나는 내릴 준비를 위해 일어났다. 선반에서 배낭을 챙기는데 커브길을 도는지 몸이 잠시 휘청했다.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은 곧 무언가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천천히 기차가 섰다. 소화가 끝나고 되새김질을 잠시 멈춘 것인가. 육중한 기차가 나를 바깥으로 탁,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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