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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시인


 

마당에도 노란 민들레가 피어났다. 날이 흐려서인지 마음에 노란색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서인지 그 빛이 예전만 못하다. 4·11 총선이 끝났다. 면 소재지에서 걸어서 15분 걸리는 내가 살고 있는 곳까지 들려오던 선거차량의 유세소리가 사라져 갑자기 동네가 다 고요하다. 스피커 소리에 놀라며 짖어대던 개들도 낮잠에 들어 동네가 온통 고자누룩해졌다. 주위가 고요해졌는데 나의 마음은 왜 이리 싱숭생숭 시끄러워지는 것일까. 



하늘공원에서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고 있다. (경향신문DB)



투표 전날 매화나무를 한 그루 샀다. 마당에 나무를 심으며 나무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나무가 커가며 공간의 풍경을 어떻게 바꿔갈 것인가. 계절에 따라 나무는 그림자를 어떤 방향에 내려놓을 것인가. 어떤 종류의 새들이 날아와 무슨 노래를 불러줄 것인가. 지나는 바람소리를 읽어줄, 흙에서 빛깔을 끌어올려 꽃을 피울, 나무에 대한 생각들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그 즐거운 마음속에서 이번 투표 결과를 미리 그려보기도 했다. 사필귀정이라 하지 않았는가. 분명 투표용지가 씨앗이 되어 정정당당 민심의 푸른 숲 밝게 그려줄 것이다. 그런데 이 어찌 된 일인가. 나의 믿음이 애초부터 잘못되었던 것인가. 



‘세계는 그 신비의 내밀성 속에서 정화의 운명을 바라고 있다. 인간이 보다 좋은 인간의 싹이며 노랗고 무거운 불꽃이 희고 가벼운 불꽃의 싹인 것과 같이 세계는 보다 나은 세계의 싹이다.’ 시인이며 철학자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글귀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에 의문형으로 변형되어 떠오른다. 정말 인간이 보다 좋은 인간의 싹이고 세계가 보다 좋은 세계의 싹인가. 세계는 진정 정화의 운명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동네에 술을 잘하는, 건장한 몸을 가진 친구가 한 명 있다. 이 친구가 누이가 살고 있는 도시에 갔을 때다. 누이가 아침운동을 나가며 이 친구를 데리고 갔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이었다. 친구 누이는 달리기 운동을 나서고 친구는 숙취가 심해 공원 의자에 앉았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가 있는 곳은 화장터가 있고 주위 산 전체가 공동묘지인 납골공원이었다. 취기가 남아있는데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며 겁이 났다. 그때 안개 속에서 한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분명 얼굴이 없는 사람이었다. 술이 덜 깨서 그런가. 친구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분명 얼굴이 없었다. 얼굴 없는 사람. 친구는 그 사람의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겁에 질려 누이를 기다리는데 누이는 오지 않고 그 발소리가 되돌아 다가왔다. 역시 얼굴이 없었다. 친구는 용기를 내어 시선으로 힘들게 안개를 밀어내며 얼굴 없는 사람을 바라다보았다. 세상에! 그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뒤통수에 달려 있는 게 아닌가. 그 사람은 뒤로 걷기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는 그제야 어이없는 웃음을 털었다. 자신이 납골공원에 있다는 선입관에 빠져, 지레짐작 겁을 먹고 있어 눈앞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위에 적어본 우스개 이야기처럼, 이번 선거에서 우리 유권자의 시선을 흐리게 하고 겁을 준 것은 없었을까. 북한의 미사일, 막말, 번복, 전 정권도 사찰, 이런 말들로 물타기를 해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려놓은 것은 아닐까. 방송 3사의 파업기간을 등에 업고 중요한 이슈나 정책보다 여당 지도자의 손에 감긴 하얀 붕대에 포커스를 맞추게 한 것은 아닐까. 


어쨌든 선거는 끝났다. 야당은 실패했다.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기보단 내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여당이 이리할 것이란 것을 몰랐을 리 없고 몰랐어도 안된다. 그러나 패배야말로 얼마나 견고한 희망의 씨앗인가를 생각하면 소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래전 대선 때의 일이다. 투표를 하러 가려 하는데 어머니가 농을 자꾸 뒤지며 따라나서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무엇을 찾고 있냐고 물어보았다. 도장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어머니 도장도 내가 챙겼다고 하자 보여 달라고 했다. 도장을 보여 주었더니 그 도장 말고 한자로 이름 새긴 나무도장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 도장은 고향에서 퇴거해올 때 실수로 면사무소에 놓고 왔다고 했다. 그러자 그 도장 꼭 찾아오라며 이렇게 말을 이으셨다.


‘그 도장은 6·25 때 북으로 끌려간 네 작은외삼촌이 새겨 준 거다. 나는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통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 도장을 가져가 투표를 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꼭, 찾아와라.’


민들레꽃은 차다. 냉철하다. 민들레의 맛은 인내처럼 쓰고 생명은 질기다. 벌써 밭둑은 연초록 옷으로 갈아입었고 노란 민들레 단추를 달았다. 자연은 때가 되면 순리에 맞게 옷을 갈아입거늘, 어찌 사람들은 그리하지 못하는지. 한겨울 옷을 갈아입을 때 잠시 춥다고 하여 속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옷이 때에 절어 더 오래 추위에 떨어야 한다는 걸 모를 리 없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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