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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 모르는 것이 없는 듯했다. 관계수석실로부터 보고를 받자마자 다른 물고기들이 놀라지 않도록 크기를 줄이라고 말했다. 크기를 줄이면 첨단복합기술이 들어갈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자, 기능을 나눠 여러 마리가 같이 다니게 하는 ‘편대 유영 기술’ 개발을 지시했다. 이때 참석했던 한 참모는 “대통령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감각이 대단하다고 느꼈다”고 당시 상황을 술회했다 한다. 불과 4년여 전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 그리고 로봇 물고기 이야기다.
대단하다던 대통령의 감각이 실은 ‘선무당 사람 잡는’ 수준이었다는 게 드러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 감사원이 시험한 결과, 1초에 2.5m를 헤엄칠 수 있다던 로봇 물고기들은 실제로는 23㎝만 움직였다. 센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오염 측정은 불가능했고, 물속 통신거리도 목표치에 훨씬 못미쳤다. 제작된 9마리 가운데 7마리는 군집제어와 위치인식 등 주요 기능이 아예 고장 난 상태였다.
언론들은 혈세 57억원이 하늘로 날아갔다며 탄식을 쏟아내지만, 강바닥에 쏟아부은 돈이 그것의 수천 배라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흔적 없이 사라진 맑은 여울목과 은빛 백사장, 녹조 카펫에 제 빛깔을 빼앗긴 강물, 산란할 곳을 찾아 멀리 떠난 물고기와 새들, 이들의 가치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게 당시 의사결정에 관여했던 청와대와 고위권력자들에 대한 조사일 터다.
경남 양산시 부곡면 본표교에서 바라본 사라진 낙동강 모래톱(습지). 4대강 공사 이전 사진과 비교해 보면 모래톱이 유실돼 있다. (출처 : 경향DB)
규명해야 할 의혹은 부지기수지만, 로봇 물고기에 국한하면 이런 의문이 든다. 그들은 왜 수질자동측정기기가 널려 있는 나라에서 굳이 로봇에 수질 감시를 맡기려 했을까.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이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를 무마하기 위해서였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로봇 물고기에 주어진 임무는 수질 감시였지 개선이 아니었다. 내장된 센서가 수질 나쁜 곳을 빨리 알아낸다 해도 그것만으로 물이 저절로 깨끗해지지는 않는다. 로봇 물고기로 반대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건 국민 수준을 얕잡아봤다는 뜻이다.
정치가 과학을 악용해서는 안된다는 게 로봇 물고기가 던지는 교훈이라는 주장 속에는, 과학은 인간의 삶을 늘 이롭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지난 정부의 잘못 때문에 미래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로봇 개발을 팽개쳐서는 안된다는 논리도 그것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과학이 국가 경쟁력의 도구로 동원되는 순간,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이라는 명제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로봇 물고기는 거꾸로 과학이 정치를 이용한 사례로 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사람들은 로봇에 열광한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3D 분야의 일을 대신 처리해주니 그럴 만도 하다. 로봇은 정치와 군사 영역을 넘어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아 있던 감정의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대필 작가와 인공지능 운영체제의 사랑을 다룬 영화 <그녀>처럼 가상 세계의 얘기가 아니다. 네덜란드의 심리학자들이 개발했다는 최초의 로봇 심리학자 ‘마인드 멘토’는 스트레스와 불면증은 물론 대인관계 장애까지 치료한다. 아직 프로그래밍되지 못한 정신분열증과 조울증, 약물중독까지 다루게 되면, 이 로봇의 개발자들은 졸지에 실업자 신세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2009년 11월27일 밤, 미리 준비한 영상까지 내보이면서 로봇 물고기를 소개했던 대통령. 그는 기계든 자연이든 완벽하게 조작할 수 있다는 ‘과학 물신주의’에 취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과학기술이 생명을 대체할 수는 없다. 대리만족은 대리만족일 뿐이다. 이미 기계에 자리를 내준 영혼의 감각을 되찾고 싶다면, 첨단기술은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착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불량 로봇 물고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안병옥 |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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