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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4글자 중 겨우 56자였다. 조금 더하자면 174개 글자다. 합해도 230글자, 전체 글 중 2.6%에 불과하다. 취임 3주년이 된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에서 기후변화와 미세먼지를 언급한 글자의 개수다. 글자 숫자만 가지고 중요도를 다루기엔 무리가 있지만 빈약한 건 사실이다. 더 놀라운 건 신년 기자회견 당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물은 기자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새삼스러운가!

기후위기는 정치 지도자의 어젠다다. 그저 급작스러운 날씨문제가 아니다. 예컨대 2010년 기후위기로 러시아에서 밀 생산량이 25% 줄어 수출이 중단되었다. 이웃 시리아에서 수입의 대부분을 밀값으로 지출하던 서민층이 폭동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했고, 그 결과 대거 난민과 이슬람국가(IS)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산불이 휩쓸고 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버종 지역에서 15일(현지시간) 한 주민이 불에 탄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호주의 산불도 산불로 끝나는 게 아니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약 5만7000달러에 달하는 세계적인 부국 호주의 시민들이 장기간 지속된 산불과 기후변화의 여파로 기후난민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재산상 손해는 44억달러에 달하며 야생동물 10억여마리가 폐사하였다.

지난해 12월 기후변화 당사국총회가 진행되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독립 평가기관인 저먼워치, 뉴클라이밋연구소, 기후행동네트워크(CAN)가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2020’을 발표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예상했듯이 전체 61위 중 58위로, 지난해 57위에서 한 단계 떨어졌다. 100점 만점에 28.53점. 그런데도 여전히 기후변화를 남의 나라 일인 것처럼 탄소감축에 관심이 없다. 아직도 석탄발전소는 60기나 가동하면서 오히려 7기를 더 건설하고 있고 동남아로 수출까지 하고 있다. 선진국은 탄소배출을 감축하고 있지만 우리는 계속 증가하여 2018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7억t을 넘겼다.

산불로 부모를 잃은 새끼 캥거루와 왈라비들이 15일(현지시간) 호주 퀸즐랜드주 비어와 호주동물원 야생동물병원에 마련된 임시 숙소에서 쉬고 있다. 호주에선 지난해 9월 이후 심화한 남동부 지역 산불로 남한 면적보다 넓은 땅이 불탔으며 동물 10억마리 이상이 희생됐다. 현재까지 28명이 사망하고, 주민 10만명에게 대피령이 내려졌다. ‘기후 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연합뉴스

유럽의회는 지난 11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기후비상사태’를 선언하였고, 세계 1200여개 지방정부들도 이 기후위기 비상사태에 공감하여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제로’에 도전하고 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신년사에서 ‘지구 온난화는 현실이며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 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인간적 능력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 지금도 가능하다. 오늘 우리가 행동에 나서지 않아서 나타나는 결과는 우리의 자녀, 그리고 손자 세대가 겪게 된다’고 강조하였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의 총리들의 신년사에서도 기후변화에 대한 각오와 결심이 비장하게 흐르고 있었다.

호주 산불, 미국의 대홍수, 인도의 열파 등 폴 크루그먼의 말대로 우리는 ‘대재앙이 뉴 노멀로 자리 잡은 세계’에 살고 있다. 과연 재난이 우리를 피해갈 것인가. 우리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나. 우리는 누가, 어디에서 우리의 안전과 미래를 지켜줄까.

호주산불로 코알라가 새까맣게 타죽고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뉴스가 띄엄띄엄 나오는 가운데 이제 모든 뉴스의 중심은 선거, 선거로 흘러 내 가슴도 타들어 간다. 그러나 선거는 모든 이슈의 블랙홀이 될 수도 있고 혁신가들이 무대에 오르는 경연장이 될 수도 있다. 미래를 읽고 대전환을 이끌 기후혁신가들의 등장을 기대한다.

<이미경 | 환경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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