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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4·27 판문점선언’의 마지막 조항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복음입니다. 하지만 완전한 ‘핵 없는 한반도’는 북한의 핵무기 폐기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완전한 비핵화’는 남한의 핵발전소도 포함해야 합니다. 핵분열로 에너지를 얻는다는 점에서 핵발전과 핵무기는 동일한 기술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재’라 부르는 방사성물질이 생성되는 것도 같습니다. 핵무기처럼 핵발전소도 폭발합니다. 핵무기는 인간의 의도에 따라, 핵발전소는 인간의 의도와 상관없이 폭발합니다. 핵발전소 사고도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임을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보여주었습니다. 비핵은 탈핵을 포함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탈핵을 선언했지만, 현실은 탈핵 선언에 역행하는 행태들로 가득합니다. 신고리 5·6호기는 공약 후퇴라는 비판 속에서도 건설 재개로 결정되었습니다. 적어도 현재로는, 탈핵은 60여년 이후의 미래가 되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폐쇄적이고 파행적으로 운영되었던 사업재검토위원회의 권고를 따라 고준위핵폐기물 재처리와 고속로 연구·개발 사업을 2020년까지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이미 지난 20년간 6700억원이 투입되었고, 올해 지원액만 406억원입니다. 뚜렷한 성과도 전망도 내놓지 못했고, 외국에서도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안전성과 경제성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고준위핵폐기물의 처분 방안을 결정한다면서, 그전에 특정한 처분 기술 연구부터 밀어붙이는 속셈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월성1호기는 2017년 2월 서울행정법원에서 수명연장허가 취소 판결을 받았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가 항소했습니다. 새 정부가 탈핵을 선언했어도,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월성1호기 폐쇄가 반영되었어도, 항소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핵시설에 필수적인 안전한 운영과 엄격한 감독을 실감할 수 없는 것도 여전합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방사선에 오염된 2.4㎏의 금이 사라졌고, 연구용 원자로 해체로 나온 핵폐기물이 고철로 팔려나갔습니다. 며칠 전, 고리 3·4호기 격납건물 안쪽의 철판 두께가 불량한 곳이 4235군데로 밝혀졌습니다. 한빛 1·2·4호기, 한울 1·2·3호기에서도 철판 불량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바라카 핵발전소 준공식을 계기로 정부는 원전 수출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사업성을 따지기 전에, 핵발전소를 내 나라에서는 없애고 다른 나라에는 보급하겠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모순입니다. 우리나라에 해로운 것은 다른 나라에도 해롭습니다.

정부는 에너지 전환을 위해 재생에너지 비율을 2030년까지 20%로 확대하려고 합니다. 기술과 경제의 측면에서 보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은 기술과 경제만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자본의 논리로 접근하면 재생에너지도 죽음의 에너지로 변합니다. 태양광 사업에는 이미 투기 조짐이 보이고, 무분별한 태양광 발전소 추진으로 산림 생태계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의 개발 이익만 노리는 자본의 논리는 제지되어야 합니다. 윤리적인 에너지 전환은 우리의 삶에 대한 깊은 반성을 요구합니다. 어느새 우리도 소비주의의 삶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광란의 소비 세계는 모든 형태의 생명을 착취하는 세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프란치스코 교종, <찬미받으소서>). 에너지 전환은 ‘나’만 생각하는 삶을 ‘너’도 생각하는 삶으로 전환하는 노력과 함께 진행해야 합니다. 재생에너지는 ‘나’를 절제함으로써 ‘너’를 배려하는 돌봄의 문화와 함께 확대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에너지 전환도 자본의 논리에 지배되고 맙니다. “적은 것이 많은 것이라는 확신”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나와 너, 우리와 자연이 공존하는 에너지 전환이 이루어질 것입니다(<찬미받으소서>).

<조현철 신부 녹색연합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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