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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들 융도(戎稻) 쌀 옥보다 윤나도록 깨끗이 찧고, 닭국은 깨즙 넣어 부드럽게 끓이고 잉어회에 곁들인 알싸한 겨자장. 부추김치는 자못 매콤하고 미역국은 푸른빛 더욱 감도네. 무는 사철 내내 먹기 좋아 채소 가운데 으뜸이라. 은실처럼 가늘게 채 쳐 상에 올리니 차림새가 조촐하네.” (金堤戎稻飯, 精鑿潤於玉. 鷄瀋荏삼滑, 鯉膾芥醬馥. 䪥葅味稍辣, 海帶羹更綠. 蔓菁食四時. 菜族爲宗祖. 縷切銀絲細, 登盤粲可數.)
길가의 콩잎이 누렇게 타는 삼복, 전라도 장계를 지나던 종4품 장파총이 그 마을 백정집에 저녁을 청한다. 가장과 삼형제가 도축만이 아니라 장사에도 힘써 부를 이룬 집이었다. 그런데 주인은 고명딸 방주를 시켜 앞서 본 저녁을 차리고도 제대로 된 식기가 없어서 부끄러웠다. 도리어 나그네가 아무렇지 않았다. 하늘은 귀천을 가리지 않으니 사발이고 밥통이고 되는 대로 먹자고 했다. 밥상을 물리고는 주인에게 “뜻이 맞으면 모두 친구”라고 말했다. 자신은 하느님이 사람 사이에 계급을 나누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 없다며 다독였다. 장파총은 실은, 동네 시냇가에서 이 집 딸 방주를 이미 만났다. 나그네에게 물 한 사발 떠 주는 사이에도 엿보이는 이름 모를 소녀의 찬찬함에 단박에 반했다. 다시 이 집에서 방주가 밥상 차리고 내는 모습을 보고는 결심을 굳힌다. 방주를 내 며느리 삼겠다! 김려(金려·1766~1822)가 남긴 서사시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은 구절마다 놀라운 대목이 깃든 걸작이다. 미완성작이라 장파총과 백정의 정혼 이후는 알 수 없어 안타깝지만.
몰락 양반 출신 장파총이 젊은 날 양양에서 영종도에 이르는 바다를 돌며 호연지기를 키우는 장면 또한 장쾌하기 이를 데 없다. 조기, 준치, 도다리, 송어, 전복, 숭어, 민어, 명태 어업을 접한 장파총은 거기 깃든 노동과 생태 문제 또한 현대인처럼 감각했다. 그러고는 걱정한다. 하늘이 낸 생명을 마구 잡다가는 어획의 기쁨도 잠깐이고, 우리는 쓸쓸한 처지를 맞닥뜨릴 거라고. 장파총의 청혼은 장난이 아니었다. 탁 트인 마음은 자수성가의 밑천이 되었을 뿐 아니라 생명을 애처로이 여기는 마음, 백정을 혼인 상대로 대할 수 있는 마음으로도 자랐다.
어느 분은 이 작품에서 막 꿈틀거리는 생태주의를, 여성주의를 건져 올리기도 할 테다. 어느 분에게는 조선 후기 어업사가 삼삼할 테다. 그런데 내게는 ‘융도(戎稻)’ 두 자가 뭉클하다. 오랑캐 융, 벼 도. 또는 두 글자 사이에 조를 넣어 융조도(戎早稻)라고도 썼다. 거칠게 요약하면, 건국 초기 조선의 북쪽 끝, 여진과 접경을 이룬 추운 데서 나는 벼를 가리킨다. 훈민정음으로는 ‘되오리’ ‘되올리’ ‘되오려’ ‘되올려’ 등으로 써 오랑캐 땅에서 유래한 조생종임을 나타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조생종 벼 품종 획득에 힘을 기울였다. 보리를 먹어치우고, 가을에 본격적으로 벼를 거두기 전, 조생 벼가 식량의 징검다리가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냉해를 견디는 품종을 확보한다는 의의도 있었다. 되오리와 함께 거론되는 ‘어름것기’ ‘빙석도(氷析稻)’ ‘빙도’와 같은 품종 기록도 예사롭지 않다. 얼음이 막 풀리는 즈음에 파종 가능한 품종이란 뜻이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육종을 통해 새 품종을 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라는 궁리했다. 1438년 세종 20년 4월4일, 의정부와 세종은 조선 최북단 고을인 여연, 강계, 자성에서 조생벼 볍씨 25석을 확보해 충청, 경상, 전라 삼도에서 시험 재배할 것을 결정한다. 오늘날의 도입육종이다. 노력과 궁리는 15세기 농서인 <농사직설>과 <금양잡록>에 흔적을 남겼고, 조선 후기 기술서에 이어진다. 이를 소담한 문학 작품에서 실제로 확인하며 느끼는 보람이야말로 음식 문헌 읽는 보람이기도 하다.
이게 나라다. 유사 이래 농업은 농민과 개인 독농가와 나라가 손잡고 북돋고 길렀다. 농법과 품종의 혁신, 상황과 제도에 대한 판단 모두 한편으로는 농민이, 한편으로는 당연히 나라가 맡아야 한다. 농민은, 국민은 나라가 농업에서 할 일을 하도록 촉구하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발하고 연일 인사가 화제다. 시원하다, 잘했다 하는 박수를 보내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단 이때에도 시민 사이에 농식품부 인사에 대한 관심을 엿보기는 힘들다. 이게 나라다, 여기에도 제 사람 쓰자고 고심했구나 하는 감동을 농식품부 인사에서 과연 볼 수 있을 것인가. 옛 밥상 기록 한 자락 읽는 동안 나는 갸웃거리며 속이 탄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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