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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직설

얼굴을 되찾는 용기

opinionX 2017. 5. 16. 10:58

2016년 5월17일. 강남역 인근에서 한 여성이 살해됐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알려지자 여성들은 강남역 10번 출구로 모여들었다. 색색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슬픔과 공포, 분노의 마음들이 그려졌고, 당신이 바로 나라는 고백, 잊지 않겠다는 다짐, 이 세계를 바꾸어나가겠다는 약속 등이 빼곡하게 적혔다. 무고한 죽음에 대한 애도가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번져갔던,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우리에게 그 1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페미니즘으로 요동쳤다. 2015년 온라인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일었던 페미니즘 운동이 드디어 거리로 나섰다. 다양한 단체들이 결성되었고, 담론은 확장되었으며, 페미니즘 시장 역시 형성되었다. 각성하기 시작한 페미니스트들은 촛불광장에도 참여했다. ‘페미존’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깃발이 나부꼈다. “나라 바꾸는 계집, 호모, 가난뱅이, 페미”가 등장했다. 그야말로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실로부터 비롯된 한계 역시 존재했다.

한 페미니스트가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는 추모 공간에까지 찾아와 혐오발화를 서슴지 않았던 한 남성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고 사라졌다. 그는 논쟁을 끝내고서야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분홍색 마스크였다. 얼굴이 찍혀 신상이 털리거나 조리돌림 당하지 말라는 마음. 많은 여성들이 그 마음에 공감했을 것이다.

지난해 5월 20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지난 17일 새벽 인근 공용화장실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여성을 추모하는 글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강윤중 기자

여기에 그 현실이 놓여있다. 추모조차 안전하지 않은 곳이 바로 우리의 세계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현실이 있다. 우리가 지나치게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이야기되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다. 우리의 두려움이 과도하다는 말은 아니다. 두려움이 사슬이 된다는 의미다. 얼굴을 가리는 것이 비겁하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얼굴을 되찾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얼굴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여성들의 공통 경험, 그 기억이 일상적인 공포라는 사실은 우리의 운동을 절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도 했다. 강력한 피해자 정체성을 바탕으로, 나를 숨어들게 만드는 두려움을 자양분으로 했던 움직임. 그 한계를 뛰어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것이야말로 이 세계가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자리다. 그리고 그것은 강력하게 ‘생물학적 여성’으로 한정 지어진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강남역 10번 출구’라는 추모의 시공간은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성별에 대한 자각 없이 살았던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그에 가해지는 억압과 부조리와 싸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는 혁명과도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여성들에게는 또다시 두려움을 주입하여 스스로의 활동반경을 줄이고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획일화된 범주 안에 고착되게 했다는 점에서 반동적이었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강한 운동을 위해서는 확고한 정체성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런 정체성이란 우리를 다시 그 자리에 가둔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나의 현실을 조건 짓고 있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운동을 추동해가면서, 동시에 장애인, 퀴어, 이주민 등과 같은 다양한 정체성들과 접속하여 그 경계를 넘는, 일종의 이중전략이 필요하다. ‘뿌리를 내리면서 이동하기(rooting and shifting).’ 이는 ‘나’의 문제를 기반으로 ‘너’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능해진다. 이는 또한 나를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스스로를 드러낸 타자와 대면해야 한다는 점에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사회가 허락한 자리를 ‘발본적’으로 깨치고 나온다는 의미에서 ‘급진’이다.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범페미네트워크가 주최하는 1주기 추모제의 제목은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앞으로의 1년은 용기로 채워진 시간들이기를 바란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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