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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정치구조 때문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대구·경북과 광주·전남 자신이다. 지역주의의 발생은 대구·경북에 의한 선행적 공세로 형성되었고, 호남 지역주의는 방어적 대응으로 나온 것이 분명하다. 구조적으로 한쪽의 지역주의는 권위주의와, 다른 한쪽의 지역주의는 민주주의와 결합해 있다. 그리고 지역주의가 일단 만들어지고 나서부터는 ‘거울효과’에 의해 심화되고 있다. 두 개의 거울을 마주 세우면 상대편 거울에 비친 모습을 되받아 끊임없이 같은 이미지를 반복해 만들어내는 것처럼 지역주의도 그런 효과에 의해 재생산되고 강화되고 있다. 이것이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이 만들어온 데칼코마니이다.

최근 눈길을 끄는 것은 요즈음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이 만들어내고 있는 또 다른 빛깔의 데칼코마니이다. 두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정치적 실험이 또한 닮은꼴을 이루고 있다는 얘기다. 가장 눈에 띄는 데칼코마니는 김부겸-이정현이다. 김부겸은 대구·경북에서, 이정현은 광주·전남에서 지역주의 구조를 넘어서기 위해 땀 흘리고 있다. 무모해 보이던 도전의 시작도 뜻밖의 성과도 두 사람의 노력은 닮았다. 이정현은 새누리당의 깃발을 들고 호남 땅에서, 김부겸은 더불어민주당의 깃발을 들고 영남 땅에서 뛰고 있다. 두 사람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맨땅에 머리를 박고 있다’는 말로 비유하는데 그 모습이 처연하다. 이 두 사람의 간절한 호소가 받아들여진다면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이 만든 지역주의 구조는 금이 가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두 지역은 정치적 다양성의 맛을 보게 될 것이다.


유승민 의원이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_연합뉴스


다른 하나의 데칼코마니는 유승민-천정배다. 이 두 사람이 추구하는 바는 구조 내의 변화다. 유승민과 천정배는 각기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진영이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각각의 주류로부터 고초를 겪고 있다. 배신자로 내몰림을 당한 것도 닮았다. 유승민은 원내대표 자리에서 찍어내기를 당하고 지금 공천을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를 상황에 놓였다. 천정배는 광주시민들의 지지로 무소속 당선을 하기 전까지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고 지금도 앞날을 알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두 사람의 정치적 의미는 각자의 지역에서 경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나태와 안일에 빠져있는 각 진영을 일깨우며 분발과 변화를 촉구하고 각 진영 내에서 경쟁을 유발하고 있다는 점이 두 사람의 닮은 역할인 것 같다.

마지막 하나의 데칼코마니는 권영진-윤장현이다. 대구시장과 광주시장인 두 사람은 구조의 혁신을 꿈꾸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지역주의 구조의 무기력과 비능률에 도전하고 있다. 두 사람의 목표는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의 협력이다. 두 사람이 함께 들고 있는 깃발은 달구벌(대구)과 빛고을(광주)의 첫 글자를 딴 ‘달빛동맹’이다. 작년 2월 윤장현 광주시장이 대구를 방문하여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횃불인 2·28민주운동기념식에 참석했고, 5월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이 광주를 방문하여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십자가인 5·18민주화운동기념식에 참석했다. 이 두 사람은 지난 연말 손을 꼭 잡고 여야를 찾아다니며 예산투쟁을 했다. 광주지역 예산이 어려움에 처하면 권영진 대구시장이, 대구지역 예산이 어려움에 처하면 윤장현 광주시장이 설명에 나섰다.

막걸리 냄새나는 김부겸-이정현, 대쪽 같은 유승민-천정배, 사려 깊은 권영진-윤장현. 스타일까지도 비슷해 보이는 이들이 각 지역에서 하는 역할은 수준이 각기 다르다. 김부겸-이정현은 구조 자체의 변화에 도전하면서 정치적 다양성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실천이다. 유승민-천정배는 구조 내에서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데 모두 진영 내부의 경쟁을 유발하고 있다. 권영진-윤장현은 가장 낮은 수준이기는 하나 가장 실질적인 실천을 하고 있다. 두 지역 사이의 협력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자는 것이다.

이런 데칼코마니가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에서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지역주의가 만들어놓은 무사안일과 나태, 무책임을 넘어서고자 하는 두 지역 시민들의 간절한 소망과 노력이 꽃피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정치적 소용돌이가 계속되고 있지만 새로운 도전과 상상력으로 이들이 만들고 있는 정치실험이 성과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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