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프랑스에 머무르고 있던 작가 목수정이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 ‘청년들이 좀 이상해’라고 했을 때(<야성의 사랑학>, 2010), 사람들은 그의 특별한 감수성이 ‘참 재미있다’라고만 생각했다. 그가 말한, ‘암컷을 따라다니는 수컷도, 수컷을 유혹하는 암컷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 청년들의 고단한 삶을 심각하게 걱정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청년들의 멘토를 자처하는 어른들은 거짓 선동만 일삼고 있었다. “청년들이여, 도전하라. 진취적인 젊은이가 되어라.” 그 말은 제법 그럴싸했다. ‘소년이여 야심을 가지라’라는 말을 밤낮으로 듣고 자란 청년들은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라는 격언만 믿고 열심히 외국어능력 기록을 경신하고, 스펙을 쌓았다. 서점에는 이를 위한 자기경영개발서가 넘쳐났다. 청년들은 초시계를 옆에 두고 시간을 관리했다.

그러나 청년들이 이 말의 허구성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른들의 말에는 ‘힘든 현실의 책임은 청년 개인들의 탓으로 돌리는’ 이데올로기가 숨어있었다. 구조적 모순을 은폐하는 담론이었다.

도전해도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안 청년들이 다시 실의에 빠져있을 때 새로운 멘토가 나타났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 청년문제 해결의 책임을 청년 자신에게 떠넘기던 이전의 멘토와 달리 새로운 멘토는 청년들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청년들 사이에 선풍이 불었다. “힘들지? 너희들의 어려움을 잘 안다. 우리 어른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같다.” 달콤한 위로에 청년들은 열광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 때문에 서점 문턱은 불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위로는 위로일 뿐이었다. 청년들의 힘든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취업도 포기하고 사랑도 포기하는 청년들이 계속 늘어났다. 구조적 모순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져 가고 있었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속까지 정치적인>의 저자 목수정씨가 책쓰기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문화예술, 정치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_경향DB


그래서 청년들이 스스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청년 자신들이 희망을 찾아 나섰다. 2013년, 한 대학에 붙은 대자보가 일파만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하나의 신호였다. ‘안녕들 하십니까?’ 수줍은 표정의, 그래서 착하게만 보이는 한 학생이 소박하게 이웃 학생들에게 안부를 묻고 나선 이 글이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첫째, 소박한 ‘말 걸기’ 방식 때문이었다. 빛나지도 않은 장소에, 투박한 손 글씨로, 수줍은 듯 던진 새로운 소통방법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둘째는 청년 자신들이 스스로 ‘공감 구하기’에 나섰다는 점 때문이었다. 안녕하지 못한 학생이 비슷한 처지에 있는 또래 학생들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한 것이 반향을 일으켰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발전이었다. 자신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집단적 자각을 촉구하는 말 걸기였다.

이거야말로 청년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 같다. 청년이 믿을 것은 청년 자신의 힘뿐이다. 2016년 새해 아침에 쏟아져 나온 ‘청년 담론’을 보니 역시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와 주요 언론들이 앞다투어 청년문제를 띄우고 있는데 그 대안들이 대부분 그간에 나온 거짓선동과 달콤한 위로를 되풀이하는 것들이다. 한 방송사가 제작한 특집 프로그램은 청년문제의 해법을 ‘청년정신’이라고 하면서 청년정신은 ‘도전과 혁신’이라 맺고 있다. 그간의 책임 떠넘기기 담론을 강화하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대안도 달콤한 위로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안녕들 하십니까?’ 이후, 청년들이 자신들의 희망 찾기에 스스로 나서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더 많은 청년들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헬조선을 냉소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지난날 청년들은 자유, 민주, 평화의 수호자를 자임했다. 바리케이드 넘어 권위주의 정권을 향해 짱돌을 날렸다. 청년들은 이제 다시 짱돌을 들어야 한다. 청년들이 들어야 할 짱돌은 최루탄을 향해 바리케이드 넘어 날리던 그 돌이 아니라 ‘종이돌멩이’(paper stone)를 말한다. 즉 투표용지다.

이제 정치의 장은 거리의 바리케이드로부터 의사당의 발코니로 옮겨갔으며, 가장 중요한 정치의 수단은 투표용지가 되었다. 투표용지를 민주화운동 시기에 날렸던 짱돌에 비견하여 종이돌멩이라고 부른다.

청년들이 다시 짱돌을 들어야 한다는 말은 투표용지를 들자는 것이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당들이 청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여러 가지 공약을 제시하고 있지만 청년들이 짱돌을 들지 않으면 그것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릴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