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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 되려면 삼 대가 덕(德)을 쌓아야만 한다는 필자의 신념은 <이건의 소방이야기>라는 칼럼을 쓰기 전과 마찬가지로 변함이 없다.

매일 도움을 요청하는 시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식사도 거르고 뛰쳐나가야 하는 삶이 때로는 고달플 때도 있지만,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면 먼저 나서서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 소방관이다.

화재, 구조, 구급 등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은 일을 매일같이 해야 하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단순히 사명감 하나만으로 견뎌내기엔 평생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무척이나 크다. 그래서 소방관은 아무나 할 수도 없고, 또 아무나 해서도 안 되는 고귀한 소명인 것이다.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해서 안전전문가로 만들어가는 과정의 연속이며, 이렇게 체득한 지식과 경험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안전전도사로써의 역할을 실천해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수고와 노력의 흔적들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행복이자 보람으로 여겨야 함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소방관이지만, 정작 그들의 직무만족도나 행복지수는 대체로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또한, 업무 특성상 극도의 긴장상태가 만성화되면 삶의 질이 떨어져서 결국 조직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에도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

긍지와 자부심만으로는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우리 안에 분명히 존재하며, 이제는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어쩌면 그 해결의 실마리를 ‘2014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국정감사에서는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문제, 소방공무원 정신건강관리 개선방안 마련, 그리고 소방장비 노후화와 내용연수 문제 등이 논의된 바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방공무원 정신건강 및 스트레스는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다. 2011년 발표된 ‘소방공무원 스트레스 수준과 직무 환경적 유발요인’(지방정부연구 제15권 제1호)이란 연구보고서가 있다.

이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부산지역에 근무하는 392명의 소방관들의 스트레스 수준을 측정한 결과, 18.1%가 고위험 스트레스 집단으로 분류되었고, 67.8%가 잠재적 스트레스 집단으로 분류되어 소방관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는 통계수치를 보여준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건 _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한편, 2014년 방송된 한 뉴스에서도, 소방관들이 공황장애, 수면장애, 분노조절장애, 불면증,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등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관리가 필요한 장애를 하나 이상 가지고 있는 소방관의 숫자가 약 2만 명이 넘는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소방관이 마냥 안락하고 편안한 것만을 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방의 선배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어렵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온 그 소중한 전통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처한 상황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정책적 개선에 관한 고민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소방관이 쾌적하게 근무할 수 있는 업무환경을 조성하고 그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주는 것과 다양한 선택의 환경을 제시하는 것은 우리 일터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누군가를 구하기 이전에 먼저 우리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 2000년 이후로 소방은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 3교대 근무 및 소방위 계급으로의 근속승진에 따른 생활패턴의 변화, 소방의 국가직 전환에 관한 국민적 염원, 소방방재청 폐지 및 국민안전처로의 직제개편 등이 대표적인 변화일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수요에 발맞추어 소방관이 행복한 직장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가 일터를 가꾸고 만들어 나가야 하며, 소방관의 행복과 복지를 위한 연구와 정책들이 더 많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한다. 또한, 우리의 소임에 맞는 분명한 목표와 실천계획을 세우고, 소방의 역할이 요구되는 곳으로부터의 기대에 충분히 부합할 수 있도록 소방의 국가직 전환을 포함한 전반적인 시스템도 정비해야 할 것이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선배, 동료, 후배에 대한 상호 신뢰, 인정 그리고 존중이 이 직업을 선택한 우리들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하는 절대가치임을 항상 기억하고, 다시 태어나도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생겨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흥을 돋우어 보자.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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