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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신고포상제가 범람하고 있다. 현재 중앙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공공기관이 운영하고 있는 신고포상금 제도의 종류는 현행 법률 수를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각각의 법률에 근거한 공익침해 사항이 최소 1개에서부터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포상금의 종류도 다양하다. 예를 들면, 가스관련 불법행위 신고포상제, 원산지 허위기재 신고포상제, 밀렵신고 포상제도, 불법 고액과외 등 학원신고 포상금제, 영화파일 불법유통 신고포상제, 부정불량식품 신고 포상금제도, 음주운전 신고포상제, 안전신고 포상제, 불공정 거래 신고포상제, 불법게임물 신고포상제도 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신고포상제가 10년 넘게 이어지고 포상금의 종류도 많아지면서 신고포상금만을 전문적으로 노리는 사람들(일명, 파파라치)도 늘어나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특수 장비와 관련 법 규정까지 속속들이 꿰고는 억대에 가까운 연봉을 벌어들인다고 알려져 있다.

신고포상제도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올바르지 않은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신고를 해 주는 사람들 덕분에 음지의 잘못된 관행과 행위들이 공정한 법의 심판을 받고 상당부분 개선된 점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포상금만을 노리고 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포상금을 받아 내는 방법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학원이 등장하는가 하면, 일부 악성 신고자들은 의도적으로 불법행위를 연출한 뒤 신고하는 사례까지도 보도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일이 현장을 확인해야 하는 공무원들의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 소방에서도 신고포상제가 있다. 비상구 폐쇄 등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 고육지책으로 마련된 것인데, 그것이 바로 ‘비상구 신고포상금제’라는 것이다.

서울시의 사례를 들어보면, 2010년 서울시소방재난본부가 이 제도를 시행하자마자 4개월 동안 접수된 비상구 관련 불법행위 신고 건수가 자그마치 2402건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지급된 포상금 액수는 약 4250만원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포상금을 지급하는 대신 소방서에서 감사배지나 소화기를 선물했다면 이렇게 많은 신고가 접수되었을지 궁금한 대목이기도 하다.





본래 비상구 폐쇄 등 불법행위 신고포상제의 취지는 각종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인명피해를 예방하고 다중이용업소 등 영업주의 안전의식 고취를 위한 것이다. 또한, 신고를 한 사람에게는 적정한 보상을 해줌으로써 시민들의 자발적인 신고를 유도하고, 비상구 확보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취지가 다소 변질되는 모양새다.

경쟁업소간 갈등으로 인해 악의적으로 민원을 접수하는가 하면, 혹자는 포상금을 노리고 계획적으로 비상구 시설을 훼손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일단 신고가 접수되면 관련규정에 의해서 소방관들이 직접 현장을 방문해 불법행위 여부를 확인해야 하므로 이에 따른 시간적, 정신적 손실도 크다.

어느 시대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사람들은 있는 법이다. 대한민국이 공식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지도 벌써 다섯 해가 지났건만 ‘신고 후 포상’이라는 방법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포상 이전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며, 수립된 정책을 기반으로 해서 법의 사각지역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섬세한 전략과 기술이 마련되어야 한다. 아울러 반복해서 규정을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에서 정한대로 차별 없는 확고한 법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국민의 안전의식 전환을 단순히 금전적 보상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채우기 보다는 지속적인 계몽과 현장방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히 보답을 해야 한다면 신고를 해 준 시민에게는 대한민국 1등 안전브랜드인 ‘119 배지’를 수여하고, 시민안전모니터 위원으로 위촉하는 등 보다 실질적으로 안전문화 정착을 권장하는 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마땅히 관리 감독해야 할 일들을 그저 손쉽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정부의 일을 국민들에게 전가시키면서 국민의 안전이 신고포상제의 그늘에 가려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기존의 신고포상제를 유지하면서도 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모색되었으면 한다.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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