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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발표된 ‘원전시설 소방특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원전에 설치된 일부 소방시설이 설계단계에서부터 누락되었거나, 시공, 감리, 소방시설의 설치 적정성 등 많은 부분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원자력발전소에서는 건축허가도 받지 않은 무허가 건물을 지어 놓는 등 그야말로 안전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또한 같은 해의 소방방재청 국감 자료를 보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소방공사 감리업체에 내려진 행정처분은 총 259건으로 이중에서 ‘허위 보고서 제출’이 절반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래 소방공사 감리제도라는 것이 소방시설 공사가 설계도 및 관련 법령에 따라 충실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공사 품질 및 기술 지도를 하는 절차를 말한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과정에서 상당수가 허위로 보고되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이며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악해서 조속히 개선해야 할 것이다.

한 번 잘못 지어진 건축물은 지역사회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위험요소가 될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 모든 건물은 처음 시작부터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서 지어야만 한다.

필자가 맨 처음 설계도면을 검토하는 업무를 배정받았을 때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소방기술사 등 전문가가 그린 도면을 엔지니어도 아닌 사람이 검토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씩 걸음마를 떼고 업무에 익숙해지면서 설계도면을 검토하는 것이 안전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얼마나 큰 권한이자 책임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 점이 많다.

이번 칼럼에서는 미국소방의 사례로써 위험관리(Risk Management)의 개념을 모든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미 공군의 소방건축시스템을 살펴보고 대한민국 소방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미 공군에서는 건축계획이 세워지면 인터넷 공고를 통해서 자격이 있는 업체를 모집한다. 계약을 담당하는 계약처는 사용자측의 요구와 관련 규정을 전반적으로 검토한 뒤 최적의 업체를 선정하게 된다.

선정된 업체는 곧바로 설계도면 작업을 시작하는데 바로 이 시점부터 소방서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통상적으로 설계도면이 30%, 60% 그리고 90%가 완성되었을 때 업체는 소방서에 도면검토를 의뢰해 온다. 즉, 3회에 걸쳐 도면검토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검토 의뢰를 받은 소방서에서는 설계도면이 관련 규정에 맞게 그려졌는지 그리고 관련서류들이 하자는 없는지를 전반적으로 검토하게 되며, 보다 기술적인 부분은 소방서에서 고용된 소방기술사가 검토한다.

이렇게 도면검토가 끝나고 착공신고가 들어오면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공사업체, 건물 사용자, 소방서 등 관계 부서의 사람들이 모여 ‘착공 전 회의(Pre-Construction Meeting)’라는 것을 진행한다. 이 회의에서는 공사기간 동안 주의해야 할 안전사항이 전달되고, 필요한 경우에는 공사와 관련한 구체적인 질의응답도 오고 간다.

그렇게 공사가 시작되고 건물이 90% 정도 완성되면 ‘준공 전 사전검열(Pre-final Inspection)’을 진행한다. 공사가 완전히 마무리되기 전 사전검열을 통해서 잘못된 부분을 미리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대단히 중요한 과정이다. 보통 이 과정에서는 스프링클러, 경보설비, 방화구획 등 입주 전 확인해야 할 사항들에 대한 작동점검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준공검사(Final Inspection)’에서는 사전검열에서 지적된 사항들을 포함한 종합점검을 실시하며, 준공검사가 끝나면 건물 사용자 및 관계 부서의 담당자를 대상으로 각 설비별 사용법 및 유지보수 방법을 설명해 주는 ‘작동 및 유지보수 교육(Operation & Maintenance Training)’을 실시한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건물이 최종적으로 건물 사용자에게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관할 소방서에서 규정에 따라서 정기 점검을 실시하게 된다.

건축의 전 과정에서 소방서는 소방기술사와의 적극적 업무협력을 통해서 높은 수준의 예방행정과 안전시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사례는 미국의 시스템이 우월하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소방도 다양한 절차를 통해서 문제점을 사전에 예방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예를 들면, 협의과정을 통해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보완통보를 할 수도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소방기술심의위원회’를 개최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소방서가 한두 명만의 인력으로 이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보니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예방행정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거기에 규제를 완화하고 민원인의 편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빠른 시간 안에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점도 담당자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건축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있고, 소방에서는 안전을 추구하다보니 어느 면에서는 서로의 이익이 상충되기도 한다. 그때 결정의 기준은 바로 안전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규제를 완화하는 현 시대의 흐름에 일부 역행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안전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설계도면 검토에서부터 안전을 잡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예산이 더 확보된다면 각 지방소방본부단위에서 소방기술사를 채용해 예방행정의 전문성을 제고하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 본다.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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