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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는 앞서 소개한 시 <쥐가 벌인 소동[서광鼠狂]>에서 대놓고 까부는 것도 완악한 노릇인데/심지어 지랄에 행패까지?/시끄럽게 다투며 내 잠을 방해하고/약삭빠르게도 사람이 먹을 것을 훔치는구나라며 쥐를 꾸짖었다. 그리고 고양이가 있는데도 쥐가 이렇게 날뛰는 까닭은 실은 고양이가 재주가 없어서라고 했다. 이 새벽, 쥐를 소재로 해 쓴 이규보의 또 다른 작품을 뒤지다 문득 한 조각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오늘 이 나라에 쥐 소동이 횡행하는 까닭이, 실은 이 나라 국민이 못나서일까?


 

모를레라! 애오라지 13세기 사람의 글에 눈을 둘 뿐이다. 입술에 쥐 기름을 칠하고, 뱃속에 쥐 살점을 장사지낼 고양이는 어디 있는가. <쥐를 저주하는 글>에서 이규보는 아직 고양이를 풀어내지는 않았다. 다만 저주의 수사를 풀어낼 따름이다. 아래와 같이.

우리 집에서는 평소에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다. 그래서 쥐떼가 멋대로 날뛰는데, 이를 미워해 쥐를 저주해 보았다(予家素不蓄貓, 故群鼠橫恣, 於是疾而呪之).

[여기까지가 병서다. 병서 다음부터가 <쥐를 저주하는 글>의 본문이다. 시는 아니지만 운문韻文이므로 한 구씩 떼어 원문을 제시한다.]

惟人之宅 사람의 집에서는
翁媼作尊 나이 많은 남녀가 어른이 되고
挾而輔之 옆에서 이들을 돕는 데는
各有司存 저마다 맡은 일이 있다
司烹飪者赤脚 음식 만들기를 맡은 이는 계집종이고
司廝牧者崑崙 마소 부리기를 맡은 이는 사내종이다
下至六畜 그 아래로 말///돼지//닭에 이르기까지
職各區分 직책에 각각 구분이 있으니
馬司代勞 말은 사람의 수고를 대신해
載驅載馳 달리며
牛司引重 소는 무거운 짐을 끌거나
或耕于菑 밭을 간다
鷄以鳴司晨 닭은 울음소리로 새벽을 알리고
犬以吠司門 개는 짖어서 문을 지키는 등
咸以所職 모두 맡은 바 소임으로
惟主家是裨 주인집을 돕는다
問之衆鼠 뭇쥐에게 묻는다
爾有何司 너희가 맡은 일은 무엇이며
孰以汝爲畜 너희를 기르는 건 누구며
從何產而滋 어디서 생겨나 불어나는가?
穿窬盜竊 구멍을 뚫고 침범해 도둑질하기는
獨爾攸知 오직 너희만이 아는 노릇이다
凡曰寇盜 대개 도둑이라고 하면
自外來思 집 밖에서 들어오게 마련인데
汝何處于內 너는 어찌 집 안에서 살며
反害主家爲 도리어 주인집에 해를 끼치는가
多作戶竇 여기저기 구멍을 뚫어
側入旁出 이리저리 들락날락하고,
伺暗狂蹂 어둠을 틈타 미친 듯이 짓밟고,
終夜窣窣 밤새도록 시끄럽게 굴고,
寢益橫恣 잠이 들면 더욱 제멋대로가 되고,
公行白日 대낮에는 보란 듯이 다니는구나
自房歸廚 방에서 부엌으로,
自堂徂室 마루에서 방으로 오가며
凡獻佛之具 부처님께 올린 음식과
與事神之物 신령을 섬기는 제물에
汝轍先嘗 너희가 먼저 맛본 흔적을 남기니
蔑神無佛 이는 신령을 능멸하고 부처님을 무시하는 짓이다
以能穴堅 단단한 것에 구멍 뚫을 줄 알아
善入函櫝 상자며 궤짝에 잘 들어가고
以常穿突 굴뚝을 뚫어
煙生隈曲 방의 구석에서 연기가 나게 하며
飮食之是盜 음식을 먹어치우니 이것이 바로 도둑질이다.
汝亦營口腹 너희 또한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겠지만
何故噬衣裳 도대체 왜 옷감을 쏠아
片段不成服 옷을 짓지 못하게 하며
何故齕絲頭 도대체 왜 실을 씹어
使不就羅縠 명주를 짜지 못하게 하느냐!
制爾者貓 너희를 제압할 놈이 고양이로되
我豈不畜 내가 왜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 줄 아느냐?
性本于慈 내 성품이 본래 인자해
不忍加毒 차마 악독한 짓을 할 수 없어서란다
略不德我 그런데도 내 덕성을 제대로 대하지 않아
奔突抵觸 마구 날뛰다 내 뜻을 거스르게 된다면
喩爾懲且悔 너희를 벌해 후회하게 만들 테니
疾走避我屋 빨리 내 집에서 나가라
不然放獰貓 그렇지 않으면 사나운 고양이를 풀어
一日屠爾族 하루 만에 너희 족속을 도륙 내
貓吻塗爾膏 고양이 입술에 너희 기름을 칠하게 하고,
貓腹葬爾肉 고양이 뱃속에 너희 살점을 장사지내게 할 것이다
雖欲復活 그때는 다시 살고 싶어도
命不可贖 명을 이을 수 없을 것이다
速去速去 얼른 꺼져라, 얼른 꺼져!
急急如律令 율령을 대하듯 급급히 하라
_이규보, <쥐를 저주하는 글_병서 포함[呪鼠文 幷序]> 전문


모를레라! 애오라지 어려운 자구에 설명이나 보태고 물러나겠다.
적각赤脚은 계집종, 하녀를 이른다. 그와 나란히 놓인 곤륜崑崙, 여기서는 쉬이 사내종으로 새기면 된다. 이는 곤륜노崑崙奴를 줄여 쓴 것인데 원래는 남중국해 쪽에서 수입되어 중국에 들어온 흑인종 노예를 가리킨다. 이미 4세기 중국 기록에 흑인종 노예 수입 기사가 보이는데 당, 송 기록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곤륜노들은 특히 물속에서도 눈을 깜빡이지 않고 익숙히 노동을 해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載驅載馳싣다가 아니라, 단순히 동사나 형용사와 만나 2음절어를 만드는 허사다. 굳이 새길 필요가 없다. 또 다른 허사로, “自外來思또한 금방 알아먹기 힘든 쓰임이다. 여기서 에는 생각하다는 뜻이 전혀 없다. 다만 성글게 연결~종결을 표시하는 허사일 뿐이다.
命不可贖도 조금 어려운데, 여기서는 대속代贖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잇다는 뜻의 과 통용해 쓴 것이다. 이뿐이다. 까다로운 부분은 이쯤이고 나머지는 글자 그대로, 문법 그대로다. 그뿐인가. 나사못회전의 번역이 모자라 그렇지, 한문 독해가 되는 분들이라면 이 글을 읽으며 한문 운문 특유의 장단에 어느 새 몸을 실었을 것이다. 그만큼 글의 장단감도 좋다.
, 글은 재밌게 읽었다. 한데 고양이, 고양이 말이다. 하루 만에 쥐떼를 도륙 낼, 쥐 기름을 입에 묻힐, 뱃속에 쥐 살점을 장사지낼 고양이는 어디 있는가. 모를레라! 13세기 고려 시인도 실제로는 사나운 고양이를 구하지 못한 끝에 애오라지 저주의 수사를 발휘한 것일까.

고양아, 고양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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