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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쥐에 비유하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모욕죄 씌우는 것도 그렇고 참 인간이란 얼마나 자기들 멋대로인지...쥐들은 자기 삶에 충실할 뿐인데 인간이 자기들의 도덕적 잣대로 쥐를 평가하고, 나쁜 사람 닮았다고 쥐를 모욕한다.”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본 한마디다. 시절이 수상한 판에 이규보의 <쥐가 벌인 소동>이며 <쥐를 저주하는 글>을 소개했는지라 이 한마디도 심상히 보이지 않아 자꾸 들여다봤다. 들여다보며 뭐라 딱히 설명할 길이 없는, 웃자고 웃는 웃음이 아닌 웃음이 슬며시 흘러 나왔다. 사람도 쥐도 참 억울하고 힘든 시대구나...
이규보의 시대는 농업 생산이 생산의 거의 전부였던 때였다. 한데 사람은 그 귀한 농업 생산의 시작인 종자 보존에서부터 쥐와 싸워야 했다. 자연스런 산화-부패는 제쳐두고, 수확한 농업 생산물을 지키기 위한 다툼에서 가장 지독한 경쟁 상대가 쥐였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쥐는 무심히 보아 넘길 생물종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그리고 이제 몇 백 년이 지나 쥐에게 이규보 시대만 한 은유와 상징의 막이 한 겹 덧씌워질 모양이다. 아니 이규보 시대보다 더한 막인가? 또한 모를레라!
허허롭게 웃은 김에 이규보의 웃음 한 자락을 소개할까 한다. 다음과 같다.


人間可笑事頻生 살다 보면 웃을 일이 자주 생긴다만
晝日情多笑未遑 낮에는 머릿속이 복잡해 웃을 겨를이 없고
半夜衾中潛自笑 한밤중에야 이불 속에서 슬며시 웃는데
殷於手拍口兼張 이 웃음이야말로, 손뼉 치며 입 찢어져라 웃기보다 더한 웃음 

衾中所笑雖非一 이불 속에서 웃을 일이 한 가지만은 아닌데
第一呵呵孰最先 그 가운데 가장 우스운 일이 무엇인가
文拙平時遲澁者 글재주 보잘것없어 평소에는 쩔쩔매던 사람이
揮毫示捷貴人前 높은 사람 앞에서는 붓을 떨치며 날랜 체하는 것

笑中第二又誰是 우스운 일 두 번째는 무엇인가
爲吏稍貪深自秘 벼슬아치로서 탐욕을 부리되 자기 딴에는 깊이 숨기는 자일세
一物入門人盡知 뇌물 하나 집에 들여도 온 사람이 다 아는데
對人好說淸於水 남들에게는 자신이 물보다 맑다고 떠들어 댄다

笑中第三女不颺 우스운 일 세 번째는 잘나지도 못한 여자가
鏡裏自看難自識 거울 속 들여다보고도 제 꼴을 알아보지 못하고
有人報導你顔姝 누가 예쁘다고 찔러 주면
妄擬正妍多作色 주책없이 정말 예쁜 줄 알고 온갖 교태를 부리는 것

笑中第四是予身 우스운 일 네 번째는 나 자신이라
涉世無差僥倖耳 세상살이 탈 없이 지나온 게 다 요행일 뿐이었지
直方迂闊人皆知 모나고 융통성 없음은 남들이 다 아는데
自謂能圓登此位 스스로 원만한 처세를 한 덕에 이 자리까지 오른 줄 아는 것

笑中第五是浮屠 우스운 일 다섯 번째는 중놈들
邂逅佳人心已寄 미인을 만나면 마음은 벌써 쏠리는데
目送飛鴻佯不看 눈길을 날아가는 기러기에 두고 못 본 체하며
故爲灰冷無心士 짐짓 식은 재처럼 싸늘하고 무심한 스님 행세를 한다
_이규보, <이불 속에서 웃다[衾中笑]> 전문


하루를 마무리 하는 내 집 방 안
, 그러고도 내 덮은 이불 속에서 웃는 웃음이 손뼉 치며 입 찢어져라 웃기보다 더하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한낮에는 일이 많고, 그만큼 내 마음도 바빠[晝日情多] 웃으려 해도 아직 겨를이 없으니까[笑未遑]. 이제 이불 속에 파묻혀서는 응축됐던 감정이 터질 판이다. 이때에 이르러 얄궂어라!
높은 사람 앞에서 붓을 휘두르며 날랜 체하기[揮毫示捷貴人前]는 이규보 또한 남들 못잖게 해본 노릇이다. 이규보는 최충헌이 집권한 29세 이후 끝없이 권력자들에게 자신의 글을 드러낸 덕분에 본격적으로 벼슬을 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동명왕편>에서 보인 큰 뜻을 펴기 위한 구관 활동이라고 해도, 그것은 분명 귀인전貴人前에서의 어릿광대놀음이었다. 그렇게 오른 벼슬길,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 벼슬아치 집에 무슨 뇌물이 들어가는지 사람들이 다 아는데, 남들 앞에 청렴한 척 나대는 벼슬아치들은 왜 그리 많은지.
잘나지 못한 여자의 예쁜 체역시 지나온 구관 활동과 무관치만은 않을 것이다. 이규보는 32세에 최충헌의 잔치에 불려가 이인로, 함순, 이담지 들과 함께 최충헌에게 글재주를 뽐낼 기회를 맞았다. 이후 40세에 한림원의 임시직에 들기까지 좋다” “잘 쓴다는 빈말을 들었을지언정 실속은 없었다. 권력자를 향한 구애의 글쓰기가 주책없는[妄擬] 교태부리기, 아양 떨기[多作色]와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그렇게 해서 벼슬을 하고 문인관료로서 행정 능력을 발휘하게 되기까지가 다 요행이었을 뿐[僥倖耳]이라 했으니 무척 쓸쓸한 느낌도 든다. 여기에 직방우활直方迂闊을 덧붙였다. “직방直方정직방정正直方正의 뜻으로, 여기서는 모나다라고 새기면 그만이다. “우활迂闊은 그저 어리석다가 아니라고, “현실 적응력이 떨어지다” “융통성이 없다의 뜻이다.
이 또한 얄궂다. 정직방정하고 우활한 사람이 구관 행각을 벌이는 길에 권력자에게 글재주를 뽐냈다. 이어진 원만한 처세의 갈팡질팡에 이르면 이규보 웃음의 속내가 되돌아 보인다.

끝으로
미인 앞에서의 아닌 체는 나사못회전 또한 어쩔 줄 모르는 바다. 다만 회랭무심灰冷無心”, 곧 식어 불기 빠진 재인 듯, 무심함을 굳이 가장하지 않아도 무탈한, 노골의 시대에 감사하고, 안도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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