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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이울 틈 없이 바로 여름이다. 늦봄 없이 여름이니 “이울다”는 말은 도무지 소용에 닿지 않는 시절이다. 이운 봄 없이 여름이 오고, 거리는 여름 화장으로 빛난다. 눈은 오늘의 거리에 두고, 손은 문득 조선 후기 시인 이옥(李鈺, 1760~1813)의 문집을 뒤진다.

歡莫當儂髻 그대, 내 트레머리에 닿지 말아요
衣沾冬栢油 옷에 동백기름 묻어나니까
歡莫近儂脣 그대, 내 입술에 가까이 오지 말아요
紅脂軟欲流 붉은 연지 부드러워 흘러드니까

이옥의 연작시 <이언俚諺> 가운데서도 자신의 매력을 뽐내(유보할 사항이 있으나 아무튼 “팔아”) 먹고사는 여성들을 제재로 한 노래 모음인 <탕조宕調>에 속한 노래 한 자락이다.
보는 그대로다. 화장은 복식과 함께 하게 마련. 수고를 다해 트레머리를 올리고 동백기름으로 마무리한 여인. 연지로 붉은 빛을 도드라지게 올리고는 추근대는 사내에게 짐짓 딴전이다.
게다가 사내를 부르는 2인칭 대명사가 “환歡”이다. 문맥에서의 느낌을 살리자면 “자기야!”쯤도 가능한 말이다. “환歡”은 “환희歡喜”의 쓰임처럼 원래 “기쁘다”라는 뜻이지만 고시의 대표적인 갈래인 악부에서 일쑤 연인을 부르는 대명사로 전용된다. 기쁨 가운데 으뜸이 무엇이겠는가. 누가 나를 가장 기쁘게 하겠는가. 언어는 달라도 “환歡”에는 "honey"만한 말맛이 담겼다.

트레머리에 동백기름, 그리고 붉은 연지로 한껏 멋을 낸 여인의 상대는 어떤 사내였을까. 밀어내고 싶은 진상 손님이었을까, 어쩔 수 없는 기둥서방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여인의 동백기름과 연지의 자취를 걱정해야 할 기혼자 애인이었을까.
그 사내가 기방 출입을 하는 기혼자였다면, 이 사내, 흔적을 지우지 못한 덕분에 집에 돌아가 공인된 제 짝과 이러고 싸웠을 게다. <이언>의 또 다른 꼭지인 <염조艶調>에서 다시 한 수 뽑는다.

歡言自酒家 당신은 술집에서 왔다지만
儂言自倡家 기생집에서 왔겠죠!
如何汗衫上 언제 내가, 당신 속적삼에
儂脂染作花 연지 꽃물을 들였나요?

“환歡”을 여기서는 “당신”으로 새겼다. <탕조>는 확실히 직업여성의 세계를 다룬 꼭지고, <염조>는 비직업여성의 생활을 다룬 꼭지라는 점에 착안해서다. 아무려나 제 사내를 “환歡”으로 부르는 여인이 있으니, 이 사단은 젊은 부부의 신혼집에서 난 사단으로 짐작이 된다.
아까 걱정한 대로인지 속적삼에 연지 자국이 남았다. 밖에서 돌아온 사내가 연지로 아예 꽃물을 들이고 왔단 말이다. 암만 생각해도 내 몸에서 옮겨갔을 리가 없는데, 하필 속적삼에 연지 꽃물이라니. ㅋㅋㅋ

예전 화장에도 요즘의 기초 대 색조, 기본 대 성장과 같은 구분이 있었다. 곧 수수하고 담박한 기본 화장은 “담장淡粧”, 담장에서 색채가 살짝 들어가 주면 “농장濃粧”, 농장을 지나 아예 작정을 하고 채색을 올려 섹슈얼리티를 연출하면 “염장艶粧”이라고 했다.
맨 먼저 본 시 속의 여인은 염장을 하고 있을 테고, 두 번째 시 속 여인은 평소 담장쯤을 하고 살았으리라. 그리고 거기서도 색조, 채색 질감에 대한 기호에 따라 무한대의 연출이 가능했을 터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진술은 색채에 대한 당대의 유행을 드러낸 것일까, 시를 쓴 이옥의 취향을 드러낸 것일까? 모르겠다. 그저 갸웃거리며, 그저 빙그레 웃을 뿐이다.

桃花猶是賤 복사꽃 화장은 오히려 천박하고
梨花太如霜 배꽃 화장은 서리처럼 너무 차갑지
停勻脂與粉 연지와 분을 골고루 발라
儂作杏花粧 나는 살구꽃 화장을 하지


*사진은 친구 솔밧이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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