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眼如劈豆角 눈은 콩을 쪼개 놓은 듯
伺暗狂蹂蹈 어두운 데서 엿보다 미친 듯 짓밟는다
任爾穿我墉 멋대로 우리 집 담을 뚫을 때
滔滔皆大盜 거침없는 기세가 어느 모로 보나 대도大盜의 그것

위 시는 이규보의 <뭇짐승을 읊음[군충영群蟲詠]> 가운데 <쥐[서鼠]> 부분이다. <뭇짐승을 읊음>은 모두 여덟 수 한 편으로 이뤄진 연작시로 각각 두꺼비/개구리/쥐/달팽이/개미/거미/파리/누에 들을 형상화했다.
앞서 이규보의 작품은 13세기 고려 사회사, 문화사의 거의 모든 열쇠말을 포괄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동식물에 걸친 생물종 또한 그의 작품에 두루 나타난다.
그 가운데 “쥐”는 인민의 생산, 사람의 생활을 해치는 생물로 등장하곤 한다. 물론 이규보는 쥐 또한 생존을 위해 인간 생활의 영역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아래 작품은 그 좋은 예다.

人盜天生物 사람은 하늘이 낸 만물을 훔치고
爾盜人所盜 너는 사람이 훔친 것을 훔친다
均爲口腹謀 사람이나 쥐나 똑같이 먹고살자고 하는 짓
何獨於汝討 어찌 너만을 성토하겠니
_이규보, <쥐를 내치며[방서放鼠]> 전문


사람은 하늘이 낸 만물을 훔치고, 쥐는 사람이 훔친 것을 훔친단다. 그리고 사람이나 쥐나 똑같이[均爲], 먹고살자고[口腹], 이렇게 한단다[謀_plan]. 덩치가 크든 작든, 사람과의 관계가 어떻든, 이나 개나 목숨 귀하긴 마찬가지라는 주장을 편 유명한 글 <슬견설蝨犬說> 속의 속내가 여기에서도 분명하다. 그렇지만 눈앞에서 인민과 나를 괴롭히는 쥐에게, 이규보는 당장의 분노마저 가릴 수는 없었다. 그는 문인이자 관료였으니까.

고양이를 기르는 건 너희를 도륙 내겠다는 게 아냐
고양이를 보거든, 너희가 알아서 숨기라도 했으면
왜 달아나지 않고
벽과 담을 뚫으며 언제나처럼 왔다 갔다 하니!
대놓고 까부는 것도 완악한 노릇인데
심지어 지랄에 행패까지?
시끄럽게 다투며 내 잠을 방해하고
약삭빠르게도 사람이 먹을 것을 훔치는구나
고양이가 있는데도 너희가 이러는 건
실은 고양이가 재주가 없어서다
하나 비록 고양이가 제구실을 못했다 해도
너희 죄 또한 잔뜩이다
고양이는 때려 내쫓을 수 있으나
너희는 사로잡아 붙들어 매기 어려우니
쥐야, 쥐야, 너희가 그 버릇 고치지 않는다면
다시 날랜 고양이를 두어 너희의 오만방자함을 벌하겠다
畜猫非苟屠爾曺
欲爾見猫深自竄
胡爲不遁藏
穴壁穿墉來往慣
出遊已云頑
矧復狂且亂
鬪喧妨我眠
竊巧奪人饌
猫在汝敢爾
實自猫才緩
猫職雖不供
汝罪亦盈貫
猫可鞭而逐
汝難擒以絆
鼠乎鼠乎若不悛
更索猛猫懲爾慢
_이규보, <쥐가 벌인 소동[서광鼠狂]> 전문


어려운 글자, 어려운 구절 하나 없이 써 내려간 직필의 이 시(오언이나 칠언이 아닌 위와 같은 형식을 “장단구長短句”라고 한다)에는 인민과 사람의 생활과 경쟁해야 하는, 경쟁하다 인민과 사람의 생활을 해칠 수도 있는 존재에 대한 강한 반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한편, <쥐를 내치며>의 쥐와 <뭇짐승을 읊음> 및 <쥐가 벌인 소동>의 쥐가 똑같은 “생물종 쥐”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전자가 “그저 쥐”라면 후자는 “인민의 생산과 국고를 축내는 존재로 은유된 쥐”로 읽히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이규보가 쥐를 소재로 남긴 또 다른 글을 읽으며 더 살펴보도록 하겠다.

아무튼 이규보가 다룬 동물은, 쥐를 빼고라도, 두꺼비/개구리/달팽이/개미/거미/파리/누에/이/배추벌레/나비/고양이/개/소 등으로 다양하다. 고답적인 세계로 시안이 벋을 것도 없이, 일상과 현실에서 건져 올린 제재만으로도 시인의 세계는 다채롭고 풍부했다. [끝]

<경향신문> 보도를 인용한 <미디어오늘>의 보도에서 퍼 옴. 
 
사진_트위터리언 @schbard가 촬영한 <쥐벽서> 현장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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