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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이규보의 삶을 건성으로 훑고 나니, 몇천 편이나 되는 그의 글이 눈에 밟혀 못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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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시인이라, “문신관료라 일러 놓고는 <동명왕편>에 어찌어찌 할애하다 그만이었으니 못쓰겠다. 하여 5월 한 달은 깜냥 되는 만큼 이규보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은 그 첫 순서다.
사람들은 흔히 시를 고상한 갈래로 여긴다. 시에 쓰는 말은 고상해야 한다는 편견도 있다. 이 통념, 이 편견은 중세에는 더했다. 일상의 구체성, 생활의 실감, 당대의 감수성이 직접 드러나는 시는 고답적이지 못하므로 저 아래로 처지는 시로 보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규보는 중세인다운 고답적인 시를 쓰는 가운데서도, 일상과 삶과 당대 들이 바로 드러나는 시를 함께 썼다. 무엇보다 시에 농민, 농민의 생산 활동, 농민 덕분에 지상에 태어난 생산품 들을 자주 등장시켰다. 농민이 어떻게 수탈당하는지도 그대로 썼다. 현실 저 너머의 몽롱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가 보고 겪고 느낀 데서 나온 시, “생산물질에 눈뜬 시를 쓴 것이다. <햅쌀의 노래[신곡행新穀行]>는 그 좋은 예다.

 

한 톨 한 톨이 어찌 가벼우랴
생사와 부귀가 여기 달렸다
부처님 공경하듯 농부를 공경하느니
부처님이라도 굶주린 사람 살리기는 어렵지
기쁘다! 머리 흰 이내 몸
올해 다시 햅쌀을 보았으니
죽어도 한이 없으리
농사의 혜택이 내게도 미쳤다
一粒一粒安可輕
係人生死與富貧
我敬農夫如敬佛
佛猶難活已飢人
可喜白首翁
又見今年稻穀新
雖死無所歉
東作餘膏及此身
_이규보, <햅쌀의 노래[新穀行]> 전문


 

어려운 글자 하나, 어려운 표현 한 군데도 없는 깔끔한 이 고체시에 고답이 껴들기는 어려우리라. 佛猶難活已飢人쯤이 까다로운 구절일까. “오히려. 이에 부처로서도, 부처라고해도가 되는 것이다.
已飢人도 재밌는 글자다. 여기서의 문법 역할은 시 전체의 시간 흐름보다 앞선 시제를 표시하는 것이다. 지금 시간의 흐름 전에 이미[]” 굶주리고 있는 사람, 돌아보기 전에 벌써 뱃구레 텅 빈 사람은 부처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새겨보라. 문득, 표류한 해변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나서야 숨진 동료가 떠올라 눈물이 나더라는 <일리아드> 속 오디세우스 일행의 일화가 떠오른다. 부처가 오든 가든 빈 뱃구레는 빈 뱃구레일 뿐.
이 밖에 설명이 필요한 말이라면 동작東作쯤이 있을 텐데, “동작東作의 원뜻은 봄 농사이며, 여기서는 그저 농사로 새기면 되겠다. <서경書經>이 출처인 어휘다.

농민과 농민 생산의 고마움에 눈뜬 시인은 관리의 부정에도 크게 분노했다. 그 자신도 관리였지만 관리의 부정이 인민에 대한 수탈과 서로 손 꼭 붙잡고 다닌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해마다 흉년이 들어 인민은 거의 죽을 판이라
뼈와 살가죽만 앙상하구나
몸뚱이에 살점이 얼마나 남았다고
싹 다 긁어 가겠다는 게냐
歲儉民幾死
唯殘骨與皮
身中餘幾肉
屠割欲無遺

그대 보았겠지, 강물을 마시는 두더지도
제 배를 채우면 그치는 것을
네놈들한테 묻는다! 대체 입이 몇 개나 달렸기에
만백성의 살점을 죄다 처먹겠다는 게냐
君看飮河鼴
不過滿其腹
問汝將幾口
貪喫蒼生肉
_이규보, <군수 몇 놈이 뇌물을 받아 죄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聞郡守數人以贓被罪]>
2
, 전문


 

歲儉民幾死거의. “간신히 남은 얼마간을 뜻한다. “은 영어의 "will"에 가깝다. 해마다 흉년이 져[歲儉] 인민은 거의 죽을 판이다. 이제 몸뚱이에는 뼈와 살가죽이 얼마간 남아 있을 뿐인데 군수란 놈들은 뇌물을 받았단다. 중세 관리의 뇌물이란 백에 백 수탈로 이루게 마련이다. 수탈은 곧 인민의 살점 뜯어먹기 아닌가.
군간君看은 한시에서 불특정의 그대[]”를 부르며 분위기를 환기, 제고하는 말이다. 비슷한 표현으로 군불견君不見”, 그대 보지 못했나?” 하는 말도 있다. “불과不過는 용량, 한도, 빈도, 상태를 지나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인은 그대 보았겠지하며 다시 한 번 분노의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강물을 마시는 두더지를 보라. 두더지도 제 배를 채우면 거기서 그칠 뿐, 뱃속 용량을 지나쳐 물을 마시는 법은 없다. 그러니 더욱 궁금타. 군수 이놈들은 다른 짐승, 다른 사람과 달리 입이 몇 개씩이나 더 달렸나? 내처, 시인은 직접 묻기로 한다. 군수 네놈들한테 한 번 물어보자[問汝], 도대체 입이 몇이나 되기에 세상 모든 인민[蒼生]의 살점을 죄다 처먹겠다[貪喫]는 것인지.

농부 공경하기를 부처 공경하듯 할 수 있는, 생산 앞에서 겸손할 줄 알았던 시인의 수탈에 대한 분노가 이러했다. 그의 겸손과 분노는 한국 문학사를 타고 흘러 나중에 김시습, 정약용 들에게서도 보이는 바가 되었다.

아참, 뱀의 발 몇 가지만 더! “將幾口은 영어의 "with"쯤의 뜻이다. 將幾口, 이번에는 거의가 아니라 이다. []

사진_<동국이상국집> 가운데 연보의 끝 및 제1권 시작 부분. 연보 작성자는 이규보의 아들 함이다. 이함은 지방직에 있느라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연보는 임종을 지키지 못했으니 평생을 두고 애통한 심정을 어찌 말로 다 나타낼 수 있으랴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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