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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천하> <탁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들로 유명한 작가 채만식(蔡萬植, 1902~1950).

채만식 글을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사람 웃을 줄 알았구나. 웃을 줄 아니까 이만한 글을 썼구나.”

사진은 1923년 채만식이 와세대 대학교 축구부원으로 출전해 우승한 뒤 찍은 것입니다. 가슴에 붙은 “W”, 와세다 대학교의 표지와 곁에 놓인 우승 기념배가 스물한 살 젊은이와 썩 잘 어울립니다. 다음 사진은 20대에 찍은 듯한 사진입니다. 여기서도 환히 웃고 있죠. 그 다음 세 번째 사진은 1936년 서른네 살 때 찍은 사진입니다. 역시 웃고 있어요.

채만식은 1902년에 태어나 1950610일에 돌아갔습니다. 동족상잔을 이승에서 목도하지 않았음은 다행이랄까... 살다가 간 세월이 참으로 어렵고 불행한 때에 걸쳐 있습니다.
일제치하를 내세워 허턱 어려웠다, 불행했다,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국주의일본의 국군주의와 파시즘은 반인륜범죄, 전쟁, 일상의 전시(戰時)화에 보통 사람을 조직적으로 동원했습니다. 말과 글로 먹고사는 지식인들은 그 뻔한 속내를 알면서도 군국주의와 파시즘에 무릎을 꿇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입니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그야말로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를 떨치던 제국주의일본은 1940330일 제국주의일본의 괴뢰 정권인 남경국민정부를 세우기도 하지요. 남경국민정부의 주석은 손문의 핵심 보좌역이었으며, 투항 직전까지 국민당 안에서 항일을 부르짖으며 장개석蔣介石과 호각을 이루던 왕정위汪精衛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7월 조선 소설가 박태원은 왕정위의 비겁한 투항과 남경국민정부 수립을 찬양하는 소설 <아시아의 여명>을 발표합니다. 이 박태원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천변풍경> <갑오농민전쟁>을 쓴 바로 그 박태원입니다.

제국주의일본에 대한 부역이 겨레와 인류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짓이며, 반인륜범죄의 종범이 되는 짓이며, 제 자신의 인간성 파멸에 이르는 짓임을 몰랐겠어요! 알고도 무릎 꿇는 마음속은 무엇으로 가득했을까요. “아 이제 제국주의 세상이구나하는 체념, “군국주의와 파시즘을 이길 길이 있겠나하는 자포자기,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공포 등등이 아니었을까요.

양심에는 왜 거리낌이 없었겠어요. 겨레 앞에, 인류 앞에 부끄러운 짓을 저지르는 동안,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에 지피고 말 것입니다. 거기에 어쩔 수 없잖아하는 자기합리화를 시작하면서는 분열과 착종의 상태에 빠져들 테지요. 그런 뒤의 선택이란 완전히 군국주의와 파시즘의 괴물이 되든지, 절망 속에서 공동체-역사-시대와 절연한 투명인간이 되든지 둘 중 하나겠지요. 이것이야말로 프란츠 파농이 말한 검은 얼굴 하얀 가면” “자기 땅에서 추방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신채호, 이회영, 김창숙, 박헌영의 예를 드시겠습니까. 저는... 이들의 투쟁과 절의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만, 표해 마지않습니다만, 만 명 가운데 한 사람이 어려운 경우가 이들이라 여깁니다. 저는 그리 생각합니다.

채만식 또한
1940년 중반 이후 군국주의와 파시즘에 무릎을 꿇고는 제국주의일본의 욱일승천을 찬양하게 됩니다. <탁류>의 리얼리즘, <인형의 집을 나와서>의 여성주의, <감독의 안해>의 속 깊은 시선(여성과 노동을 함께 아우른), <태평천하> <치숙> <레디메이드 인생>의 묵직한 풍자, <염마> <제향날>의 개성 들이 제국주의 부역과 함께라니요. 여기까지 몰린 사람의 상태를 일러 낙백落魄이라 하지 않으면 달리 무슨 말을 가져다 붙일 수 있을까요.
1940년의 어느 시점에서 채만식의 웃음기는 싹 가셨을 테지요. 아니 1937년부터 이미 도통 웃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낙백한 사람에게서 웃음이 솟을 리 없죠.

군군주의와 파시즘이 아니라도 어차피 괴물로 살았을 자한테 가슴이 아플 까닭이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때라고 해도, 너무 급한 경사로 괴물의 내리막을 걸은 자한테 안타까울 게 없습니다. 이러나저러나 투명인간이었기에 조금의 아픔도 없이 괴물을 맞이한 자들한테 번잡하고 수고로운 사면 심사는 필요 없습니다.

해방 뒤, 자신의 부역 행위를 반성한 글쟁이는 채만식이 유일합니다. 그의 반성은 추상적인 말 흐리기가 아니라 <민족의 죄인>이라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글쓰기로 행해졌습니다. 해방 뒤, <소년은 자란다>를 통해서는 해방의 의미를 그 누구보다 깊은 데서 되새겼습니다. 그 짝이 될 만한 작품으로 염상섭의 <효풍> 하나 말고 더 무엇이 있는지...

해방이 되고, 남북에 두 개의 민족국가가 서고, 20세기가 다 지나가고, 21세기 들어와서 10년을 더 보낸 오늘 또한 괴물 되기걱정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괴물 되기를 강요받은 시대를 살다가 돌아간 작가 채만식은 저세상에서 우는 표정일지 아예 무표정일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다.
다만 아직 웃음을 찾지는 못했을 줄로 짐작합니다. 아마 그럴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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