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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조선과 일본 사이에 강화도수호조약이 체결되면서 두 나라 사이의 무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뒤 조선이 망하기 전까지, 조선이 일본에서 주로 들여온 상품은 면직물, 등유, 술이었다. 조선은 그 대가로 귀하디귀한 쌀과 콩을 일본에 내주었다.

면직물. 유럽의 대형 방직공장에서 생산된 값싼 면직물이 일본에 도착하면, 일본은 그것을 많은 이익을 남기고 조선에 되팔았다. 일본은 생산 없는 중개만으로 막대한 이익을 남겼다.

등유. 말그대로 “등燈” 밝히는 데 쓰는 “기름油”이다. 그때까지 조선 사람들은 피마자기름이나 쇠기름 따위로 등불을 켜 어둠을 밝혔다. 초도 있었지만 그때까지 초란 벌통 찌꺼기인 밀납으로 만든 밀납초뿐이었다. 이는 왕실이나 문벌 높은 양반님네나 쓰는 귀한 조명 재료일 뿐 서민대중은 죽기 전까지 밀납초를 밝힐 일이 없었다. 더구나 피마자기름이든 쇠기름이든 순도가 높지 않아 조도가 별로였다. 이런 시절에 일본은 순도가 높고 품질이 균일한 미국산 등유를 소포장한 뒤, 서양식 남포(램프)와 함께 조선에 되팔았다. 마찬가지로 생산 없는 중개였다.

술. 경제사가들이 “미면교환체제米綿交換體制”, 곧 “식량 내주고 면직물 들여오는 체제”라는 이름을 달아 설명하는 이 시기, 일본이 아직 변변한 대형방직공장도 정유시설도 갖추지 못한 이때, 그나마 조선에 수출한 “일본산”으로서 가장 많이 팔아먹은 것이 술이었다.

술은 낱병짜리 사케로도 들어오고, 주정으로도 들어왔다. 그중 많이 들어왔던 사케(일본식 청주)의 한 브랜드인 “정종正宗”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인들 사이에서 “정종” 곧 “사케” 그 자체로 혼동을 일으킬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들어와 유통되었다. 그렇다면 정말 조선은 술이 없어서 사 들였을까?

오랫동안 쌀농사를 지어왔고 오랫동안 발효식품을 먹어온 땅에 술이 없었을 리 없다. 곡물을 발효시켜 쉬이 만들어 얼른 마시는 탁주(막걸리), 탁주를 더욱 곱게 걸러 맑게 해 마시는 청주, 생산 관리를 보다 엄격해 제조한 고급 청주인 법주, 발효주를 증류한 술인 소주 들이 선사시대부터 이 땅 사람들의 삶과 함께였다. 정말이냐고? 문헌을 열면 탁주와 청주와 소주에서 분화해 독립한 어마어마한 종류의 술이 쏟아져 내린다.

황금주, 백자주, 송주, 예주, 죽엽주, 파파주, 백주, 방문주, 춘주, 천금주, 녹파주, 백하주, 삼해주, 연엽주, 소국주, 약산춘주, 경면녹파주, 벽향주, 부의주, 갑고주, 하향주, 이화주, 청감주, 감주, 하엽주, 추모주, 죽통주, 두강주, 도화주, 지주, 포도주, 백자주, 호도주, 와송주, 백화주, 구기주, 오가피주, 감국주, 석창포주, 소자주, 지약주, 감국주, 구기주, 복령주 등등을 마주하고 보면, 이름 풀이를 따라 그 제조법과 재료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곤드레만드레의 너머로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이름 말고도 문헌 한 쪽만 뒤지면 얼마든지 별별 술이 다 튀어 나온다. 지방마다, 내력 있는 집집마다 가양주의 전통도 있었으니 문헌이 놓친 술도 수두룩할 것이다. 그러나 서민의 정성, 집안의 전통만으로는 대량 유통에 값하는 “균일한 주정”과 “식품의 품질 유지”에 눈뜬 일본산 술의 공세를 당할 길이 없었다.

이러는 사이 조선의 술은 하나둘 사라져갔다. 게다가 제국주의일본은 주세법을 통해 가정에서 술 빚는 것을 엄격히 통제했다. 36년 동안 중앙의 통제에 있던 조선의 술은 진화의 기회는 잃었으며, 얻은 것이라기보다 뒤집어쓴 것이 일본식 청주 제조법과 공업화된 소주 생산법뿐이었다. 해방 뒤에도 한국 정부는 일본식 주세법을 이어받으며 한국 술이 진화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미면교환 시대며 천황 시대며 다이쇼데모크라시며 군국주의 시대를 관통하는 동안, 일본에서는 훗날 세계 최고의 위스키 브렌드가 되는 산토리위스키가 쑥쑥 자랐다. 산토리위스키의 창업자 도리이 신지로는 1899년 위스키 블렌딩을 시작해, 조선에선 독립만세 소리가 드높던 기미년, 1919년에 시제품격의 위스키를 내놓는다. 그리고 1924년 교토 교외 야마자키에 일본 역사상 최초의 위스키 증류소인 야마자키 증류소를 준공해 본격적으로 위스키 생산에 들어갔다. 산토리위스키는 패전 뒤에도 위스키 블렌딩 전통을 이어갔고 이윽고 1980년대를 거치면서 산토리위스키의 삼총사인 야마자키, 하쿠슈, 히비키는 영국 위스키 팬들을 필두로 한 세계 위스키 팬들의 찬사를 받는 명주로 당당히 이름을 드날리고 있다.

나도 산토리위스키의 팬이다. 미면교환 시대를 곱씹으면서도, 교동법주와 안동소주와 영광소주와 진도홍주가 아까워 죽을 지경이면서도 산토리위스키의 팬이다. 엄마 손맛과 집안 내력만으로 안 될 그 무엇을 곱씹을 때, 산토리위스키에 더욱 손이 간다. [끝]


*다이쇼데모크라시_1911년 ~ 1925년 사이 일본에서 사상통제가 얼마간 풀린 때를 이르는 말. 당시의 연호가 "다이쇼大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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