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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백 년 세월을 건너온 이야기

고구려 건국 시조 동명왕
-주몽이 1)부여 계통으로[出自北夫餘], 2)하늘나라[天帝]와 물나라[河伯]를 아우른 혈통이며, 3)알을 깨고 이 세상에 나와[剖卵降世], 4)4)홀본(또는 졸본)에 도읍해 나라를 세웠다[於沸流谷忽本西城山上而建都焉]는 이야기는, 앞서 <광개토왕릉비문>에서 본 대로 고구려인 자신이 그린 건국 시조의 영상이다. 그리고 그 영상은, 광개토왕릉비 건립 시점을 기준으로, 적어도 7, 8백 년을 건너 고려로 이어졌다.
이는 고려 때 편찬된 정사 <삼국사기>에서, <삼국사기>를 깊이 의식한 <삼국유사>에서 본 대로다. <삼국사기>는 정사 체제인 본기本紀에 위 1)~4)의 줄거리를 남겼다. <삼국사기>는 여기에 <후한서後漢書> <위서魏書> 들에 실린 고구려 건국 기록까지 아울렀다.
한편 <삼국유사>는 북부여-동부여-고구려 순서로 기록의 편차를 잡고 동명왕-주몽의 고구려 건국을 기록했다. 여기에 위 1)~4)의 줄거리가 온전히 남아 있음은 물론이다. 나아가 <삼국유사>주몽이 단군의 아들이라는 인식까지 담았다.

두세 번 반복해 읽으며 그 근원의 취지에 들어가니
서기 1193년 고려 명종 23, 당시 스물여섯 살이었던 이규보는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역사서인 <구삼국사舊三國史>를 얻어 읽게 된다. 광개토왕릉비는 조금 과장해 말하면 20세기에 재발견된 자료로, 이규보 당시에는 고려와 중국을 통틀어 그 존재가 잊혀진 상태였다. 이규보는 일단 <구삼국사>를 통해 동명왕-주몽을 다시 보게 된다. 한 번 다시 보게 되자 그때까지 고려 민간에 전승되어온 동명왕-주몽 이야기가 심상히 보이지 않았다. 나아가 <삼국사기>가 생략한 세부가 아까워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된다.
<
동명왕편>의 서문을 통해 <동명왕편> 창작의 막전막후를 살펴보자. 이하는 서문의 전문이다.

세상에서는 동명왕의 신비롭고 기이한 일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배움이 없는 남녀 백성들까지도 그 일을 자못 그럴싸하게 주고받는다. 나는 일찍이 그 이야기를 듣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스승 공자께서는 사람을 현혹하는 초자연적인 힘이나 괴상한 일[怪力亂神]은 입에 담지 않으셨다. 동명왕의 일이 참으로 황당하고 기괴하니 우리처럼 공부하는 사람들이 말할 거리가 아니다.’
그 뒤에 <위서><통전>을 읽어보니 거기도 동명왕 관련 기록이 실려 있었다. 그렇지만 성글어 자세하지는 않았다. 이는 자국의 역사는 자세히 쓰고 외국의 역사는 생략해서 쓰고자한 속내가 아닐까.
지난 계축년 4<구삼국사>를 얻어 <동명왕본기>를 읽어보니, 그 신비롭고 이상한 자취는 세상에서 오가는 말보다 더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어 기괴한 이야기나 요술 이야기쯤으로 여겼는데, 두세 번 반복해 읽으며 점차 그 근원의 취지에 들어가니 그것은 요술이 아니라 성스러운 일이었고 기괴한 이야기가 아니라 신성한 일이었다. 더구나 한 나라의 역사란 있는 그대로 기록해 남기는 문서인데 어찌 망령된 것을 전하겠는가?
김부식 공이 나라의 역사를 다시 편찬할 때, 동명왕 관련 기록을 많이 생략했다. 이는 한 나라의 역사란 세상을 바로잡는 글이므로 지나치게 이상한 일은 후세에 보이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서 생략한 것 아닐까.
당나라의 <현종본기><양귀비전>을 살펴보면 어디에도 방사(方士, 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가 하늘에 오르고 땅에 들어간 일은 없다. 그런데 시인 백낙천만은 그 사적이 없어질까 걱정해 노래로 엮어 기록으로 남겼다(양귀비와 당 현종의 이야기를 읊은 백낙천의 서사시 <장한가長恨歌>를 가리킴). 저 일이야말로 정말 황당하고 기괴한 일인데도 시로 읊어 후세 사람들에게 보였는데, 하물며 동명왕의 사적은 변화무쌍한 신기한 일로 뭇사람의 눈을 현혹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건국의 신성한 자취한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일을 서술해 두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은 대체 무엇을 보란 말인가.
그런 까닭에 시로써 이것을 기록하여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의 나라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世多說東明王神異之事. 雖愚夫騃婦, 亦頗能說其事, 僕嘗聞之, 笑曰. 先師仲尼, 不語怪力亂神. 此實荒唐奇詭之事, 非吾曺所說. 及讀魏書通典, 亦載其事. 然略而未詳. 豈詳內略外之意耶. 越癸丑四月, 得舊三國史, 見東明王本紀. 其神異之迹, 踰世之所說者. 然亦初不能信之, 意以爲鬼幻. 及三復耽味, 漸涉其源, 非幻也, 乃聖也. 非鬼也, 乃神也. 况國史直筆之書, 豈妄傳之哉. 金公富軾重撰國史, 頗略其事. 意者公以爲國史矯世之書, 不可以大異之事爲示於後世而略之耶. 按唐玄宗本紀楊貴妃傳, 並無方士升天入地之事. 唯詩人白樂天恐其事淪沒, 作歌以志之. 彼實荒淫奇誕之事, 猶且詠之, 以示于後. 矧東明之事, 非以變化神異眩惑衆目, 乃實創國之神迹. 則此而不述, 後將何觀. 是用作詩以記之, 欲使夫天下知我國本聖人之都耳).”[계속]

 



*사진 출처 http://vertciel.blog.me/
<새봄에 생각나는 시인 이규보> 속 꽃 그림은 모두 솔밧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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