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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동명왕편>에는 고구려 사람 스스로가 남긴 고구려 건국 이야기는 물론, 지금은 볼 길이 없는 <구삼국사>와 같은 고대사의 흔적까지 살아 있다. “배움이 없는 남녀 백성들”이 “제법 그럴싸하게 주고받”는 신비롭고 기이한 이야기를 접한 데다 <구삼국사> <위서> <통전>과 같은 국내외 역사서까지 섭렵한 이규보는 자연스레 신화․전설․민담․역사를 아우를 길을 찾게 되었을 것이다. 그 서문에서 보았듯 이규보는 이제 동명왕-주몽 이야기에 깃든 상상 및 상징 세계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게 되었고 그 재해석의 결과, 공식 역사 기록에 기댄 연대기가 아닌 문학-서사시를 선택하게 되었다. 시인다운 선택이었다.

 

그 시가 담은 것
<동명왕편>은 5언시 282구에 산문으로 된 해설이 덧붙은 한문 서사시다. 주몽의 출생-시련-투쟁-승리는 전형적인 “영웅의 일생”을 그리고 있으며 다채로운 세부는 빠른 속도 위에서 역동적으로 전개된다. 하백과 해모수가 다투는 장면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이 장면은 하늘에서 용이 끄는 수레를 타고 내려온 해모수가 하백의 딸 유화를 유혹해 야합한 뒤에, 하백에게 청혼의 예를 갖추면서 시작된다.

君是上帝胤 그대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神變請可試 신통한 변화를 시험해도 되겠지
漣漪碧波中 굼실대는 푸른 물결 속에서
河伯化作鯉 하백이 잉어로 몸을 바꾸니
王尋變爲獺 왕(해모수)는 수달로 변해
立捕不待跬 몇 번 물을 짓치지 않고도 잡아챈다
又復生兩翼 하백이 다시 두 날개를 돋아 내
翩然化爲雉 꿩으로 몸을 바꾸니
王又化神鷹 왕은 신통한 매로 변해
博擊何大鷙 공격하는데 어찌 그리 날쌘지
彼爲鹿而走 저쪽이 사슴이 되어 달아나면
我爲豺而趡 이쪽은 승냥이가 되어 쫓는다


<동명왕편>의 시작과 끝 내내, 시인 이규보는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속도감과 역동성을 잃지 않는다. 해모수의 강림, 유화의 시련, 주몽의 탄생과 시련, 부여 탈출, 고구려 건국, 주몽의 승천에 이르는 모든 장면에서 긴장과 밀도가 떨어지는 법이 없다. 시의 호흡을 잠깐 가다듬는 산문 해설 부분의 재미와 이채도 마찬가지다. 아래 산문 해설 부분은 그 대표적인 예다.
 

“주몽이 이별하는 자리에서 차마 떠나지 못하자 주몽의 어머니가 ‘어미 생각은 하지 마라’ 하고는 오곡의 종자를 싸서 보내주었다. 그런데 주몽이 생이별이 가슴에 사무치는지라 보리 종자는 잊어버리게 되었다.
주몽이 큰 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데 비둘기 한 쌍이 날아들었다. 주몽이 ‘틀림없이 신모神母께서 보리 종자를 보내주신 게지!’ 하고는 활을 쏘아 한 번에 비둘기 두 쌍을 잡았고, 목구멍을 벌려 보리 종자를 꺼낸 뒤 비둘기에게 물을 뿜자 비둘기가 되살아 날아갔다고 한다(朱蒙臨別. 不忍暌違. 其母曰. 汝勿以一母爲念. 乃裏五穀種以送之. 朱蒙自切生別之心. 忘其麥子. 朱蒙息大樹之下. 有雙鳩來集. 朱蒙曰. 應是神母使送麥子. 乃引弓射之. 一矢俱擧. 開喉得麥子. 以水嘳鳩. 更蘇而飛法云云).”


시인이 꿈꾼 나라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규보는 그때의 고려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던 신비롭고 기이한 일과, 지금은 전해오지 않는 역사책까지 두루 참고해 신화, 전설, 민담, 역사를 아우르는 한 편의 웅장한 서사시를 써 냈다.
해모수, 하백이 하늘과 물의 공간을 제시했다면
1)아란불·해부루·금와·대소 등 부여계 인물들은 지상의 현실적인 정세와 정치 갈등을 압축해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2)임신한 채 가부장 하백으로부터 쫓겨난 유화를 쇠그물로 사로잡아 금와에게 바친 강력부추,
3)주몽의 첫 협력자 오이·마리·협보,
4)주몽이 부여를 탈출한 뒤 만난 협력자인 재사·무골·묵거 들의 존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훨씬 뛰어넘는 내용과 세부의 바탕이 되고 있다. 또한
5)주몽과 비류왕 송양의 대결 장면은 새로이 일어나는 나라가 선주민 세력과 싸워 이기기 위해 어떤 지혜(사실 간지奸智에 가까운)를 발휘했는지 또 얼마나 원색적인 야성(사실 잔인함에 가까운)을 발휘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고려 문학사뿐 아니라, 이제까지의 한국 문학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빛나는 서사시가 이규보의 손에서 태어난 것이다.
중국 기록에도, 또 <광개토왕릉비문> 같은 자료에도 동명왕-주몽의 이야기는 나오지만 <동명왕편>만큼 세부가 잘 살아 있고, 게다가 전체의 짜임새가 뛰어난 동명왕-주몽 이야기는 없다. 그런데 자신도 불우하고 나라도 엉망인 때 이규보는 왜 하필 주몽 이야기를 썼을까. 이미 살펴본 <동명왕편>의 서문에 그 답이 있다.

“동명왕의 사적은 변화무쌍한 신기한 일로 뭇사람의 눈을 현혹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건국의 신성한 자취한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일을 서술해 두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은 대체 무엇을 보란 말인가. 그런 까닭에 시로써 이것을 기록하여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의 나라임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http://theturnofthescrew.khan.kr/52 참조

<동명왕편>은 건국의 사적을 노래한 서사시다. 여기에는 이제 막 새 나라를 연 사람들의 씩씩함과 자신감이 넘친다. 큰일에 덤벼든 등장인물들의 야성이 살아 있다. 새로이 나라를 연 사람들의 이상이 미래의 후손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씨 또한 잘 살아 있다.
<동명왕편>을 쓸 당시, 스물여섯 살 청년 이규보는 과거 3수생 출신 임용 대기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동명왕-주몽의 자료를 수집하고 그 사적을 시로 노래하는 동안, 마음만큼은 이미 몇백 년 전 상상계의 호한한 데에 가 있었을 것이다.
그 마음을 자신의 시대에 미루어 정말 멋지고 제대로 된 나라를 이뤄 보고자 한 속내가 오롯이 <동명왕편>에 맺힌 게 아닐까. 동시에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의 나라임을 알게” 할 만한 작품을 이룸으로써 자신의 문학 수업이 경세에 가 닿을 수 있음을 나름대로 증명하려 함이 아니었을까. [계속]

*사진 출처 http://vertciel.blog.me/
<새봄에 생각나는 시인 이규보> 속 꽃 그림은 모두 솔밧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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