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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림(金起林, 1908~?), “모던뽀이” “모더니스트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시인 김기림의 얼굴이다.



김기림은 1920년대에는 니혼日本 대학 문학예술과에서, 1930년대에는 도호쿠東北 대학 영문과에서 공부했는데 졸업해 귀국한 뒤인 1930년과 1939년의 얼마간 조선일보에서 일했다. 이 사진은 1939년 조선일보 재직 당시에 찍은 듯하다.김기림의 시 쓰기, 시집 내기는 꾸준했다. 1934년 첫 시집 <태양의 풍속>을 펴낸 뒤, 1936년 시집 <기상도>, 1946년 시집 <바다와 나비>를 거쳐 1948년 마지막 시집이 된 <새노래> 들을 낼 때까지, 아무튼 시인 김기림은 꾸준히 쓰고 냈다. 하나 그에 대한 평가가 후한 것만은 아니다.

서울대학교 국문과 조동일 교수는 일찍이 김기림식 모더니즘 문학론 및 시 작품에 대해 현실 인식의 정당성은 문제삼지 않으면서 감각을 키우고자 하니 언어가 말초화되었던 것이라 했다. 또 시집 <기상도>에 대해서는 감각을 신선하게 하려는 시도가 지나쳐 무감각을 초래했다고 냉정하게 획을 그었다(<한국문학통사>[2]에서).

기실 김기림의 모더니즘은 불분명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조동일의 설명을 계속 빌리면, 김기림의 모더니즘은 서구시의 새로운 경향을 받아들여서 동시대 문명의 인상을 서구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잡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기림은 서구화된 감각의 기교를 동원하는 거의 모든 추이가 착종혼합된 일본 문단의 유행을 수입하는 데에서 모더니즘에 대한 고민을 미봉하고 말았다. 아래 몇 작품에서 보이는 수사와 시어는 미봉의 예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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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의 옥상정원의 우리 속의 날개를 드리운 카나리아니히리스트처럼 눈을 감는다. 그는 사람들의 부르짖음과 그러고 그들의 일기에 대한 주식에 대한 서반아의 혁명에 대한 온갖 지꺼림에서 귀를 틀어막고 잠속으로 피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의 꿈이 대체 어데가 방황하고 있는가에 대하야는 아무도 생각해보려고 한 일이 없다.

_김기림, <옥상정원>에서(<태양의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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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빛 꽃을 심거서
남으로 타는 향수를 길으는
국경 가까운 정거장들.

_김기림, <따리아> 전문(<태양의 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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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에서 오는 장거리 라디오의 효과를 실험하기 위하야
쥬네브로 여행하는 신사의 가족들
샴판 갑판 안녕히 가세요’ ‘단여 오리다
선부들은 그들의 탄식을 기적에게 맡기고 자리로 돌아간다
부두에 달려 팔락이는 오색의 테입
그 여자의 머리의 오색의 리본

_김기림, <세계의 아침>에서(<기상도>)


1945
년이 지나면서 쏟아낸 해방의 노래, 민주주의의 노래, 또는 <바다와 나비>와 같은 절창 들은 김기림 시 인생에서 오히려 예외에 속할지 모른다. 하나 이제사 김기림에게 야박하게 굴 생각이 없다. 김기림의 시 쓰기는 자신이 후원한 이상의 시 쓰기만큼이나 종작없었으나 그 종작없음은 모색기 한국어문사의 악전고투의 일면을 드러내는 창이기도 하니까. “한국어문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말 고생들 많았구나하는 실감을 주니까.

가령 그 모색과 실감이란 점에서는 김기림이 1931년에 발표한 희곡 <천국에서 왔다는 사나이>가 떠오르는 것이다. “: 일천구백삼십일년 이월(음력 섣달 그믐날)” “: 서울 시외로 설정한 이 희곡은 제1장에서 섣달그믐 빚 독촉에 시달리던 실직자 가장이 가족을 살해한 뒤 자살해, 2장에서는 목 없는 저승의 시체로 등장하고, 3장에서는 이승의 시체로 등장해 현실과 환상/현실과 초현실의 오가며 비극을 연출한다.

19291024일 미국 월스트리트의 주각가 대폭락하고, 그 여파가 일본에도 조선에도 여지없이 미친 그때도 해고는 살인이었다. 주인공은 왜 모가지 없이 천국으로 왔는가? 공장에서 잘린 모가지는 수습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목 없는 사나이의 대사]
불러서만 오나요. 마음에 있으면 오지. 돈 없고 먹을 것 없는데 그래도 섣달 그믐이라고 떡장수 온갖 빚쟁이는 다 모여드는구려. 그래 생각다 못해서 그만 나는 이 손으로 바로 이 손이외다, 아내와 어린 것들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그리고 내 손으로 내 목을 매어 죽었답니다.

[목 없는 사나이의 대사]
나으리 그런 게 아니라 내 모가지는 지금 서울 동양직조주식회사에 있답니다.

[목 없는 사나이의 대사]
이 업계내는 공전의 불경기가 몰려왔답니다. 물가는 끝없이 내려가나 돈은 귀하기 짝이 없이 되자 우리 회사 주인은 소위 산업합리화를 단행한다고 하고 우리들 직공 삼십명을 한꺼번에 목을 벴답니다.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값이 싼 우중에 팔리지 아니하니 일꾼을 줄인다는 게랍니다.

[목 없는 사나이의 대사]
 
국제노동국의 조사에 의지하면 전세계에는 나처럼 모가지 없는 사람이 일천일백팔십만명이나 된다고 하나 그 외에 이러저러하게 된 놈까지 합치면 이천만이 넘어요 글쎄.

[
목 없는 사나이의 대사]
 
금년 일년 동안의 세계 각나라 모가지 없는 사람들의 수효를 통계로 보면 저- 구라파의 오스트리아가 십구만일천명이고 독일이 삼백이십오만이천명이고 영국이 일백오십칠만구천명이고 이태리가 사십일만육천명이고 폴랜드가 이십이만삼천명이고 동양의 일본이 삼십육만일천명이랍니다. 그밖에도 차례에 빠지는 나라가 없답니다.



천국의 문지기는 안 그래도 천국이 만원이라며 목 없는 사나이의 입국을 사절한다. 천국의 문 앞에서 재회한 목 없는 사나이의 가족들은 지옥에서야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우? 배를 쫄쫄 조리는 것보다야 낫겠지하며 지옥으로라도 보내달라고 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옥도 만원이라며 지옥행조차 막는다.김기림이 발음하고 쓰고 고른 말은 카나리아’ ‘니히리스트’ ‘서반아’ ‘따리아’ ‘쥬네브뿐만이 아니었다. ‘해고주식회사산업합리화국제노동국불경기생산과잉또한 모더니스트 김기림이 선택한 말이었다. 물론 어느 쪽도 미봉인 채의 표현과 의미와 수사에 그치고 있지만, 그러나 이 아쉬운 자리에 잠시 멈추어 선 한국어문사는 선 김에 다시 한 번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지 않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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