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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집燕巖集>>의 한 꼭지인 <영대정잉묵映帶亭賸墨>은 연암과 연암 지인 사이의 척독尺牘을 모은 꼭지이다. 척독은 한마디로 짧은 편지이다. 짧게, 사실이나 정보나 감상이나 일상의 한순간 따위를 압축했기에 편지틀을 갖추느라 장황해진 격식 있는 서간문과는 또 다르다. 척독은 전화기 없던 시대의 전화 통화였고, 인터넷망 없던 시대의 인스턴트 메신저 또는 트위터 또는 페이스북이었다.

면무식한 사람들은 척독으로 안부를 묻고, 끽다나 음주나 회식을 위한 약속을 잡았다. 척독은 주고받는 이쪽저쪽 당사자가 공유하는 비망록 역할을 맡기도 했다. 한편 일상의 한순간이나 마음속의 한 조각이 압축될 때에, 척독은 필경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소용과 구실을 감당했다.

옛 기록에 흔히 보이는 동복童僕또는 동복僮僕이라 하는 어린 사내종은 척독을 주고받는 데 꼭 필요한 도구였다. 살림살이 복잡한 여염집 부인 곁의 계집종이며, 면무식한 사내들 상대하느라 면무식한 청루 기생 곁의 어린 계집종도 동복과 마찬가지로 하루에도 몇 번이고 척독을 품고 뛰었다. 오페라에서 흔히 보이는 쪽지 형태의 메시지message”는 일종의 서양식 척독이다. “메신저messenger”는 서양식 서번트servant”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였다.

<<연암집>> <영대정잉묵>에는 연암이 지인들과 주고받은 50편의 척독이 남아 있다. 연암은 1772<영대정잉묵>을 엮으며 부친 자서自序에서 <논어> <시경> <춘추좌씨전>까지 끌어다 척독의 가치를 논했다. 여기서 연암은 척독이 때때로 고답적인 문학 갈래와 맞먹는 가치를 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폈다. 요컨대 생활에 바탕한 문답 형식의 글에 깃든 진솔함과 표현상의 개성(척독은 워낙에 주고받는 글, 대화하는 글이다)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평가자와 엮은이와 글쓴이를 겸한 연암의 속내가 부러 그런 글만 남도록 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영대정잉묵>에 실린 척독들은 진솔함과 표현상의 개성이 어울려 고답적인 갈래와는 또 다른 글맛을 뽐내며 빛난다. 이제 볼 몇몇 문장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별을 아쉬워하는 말을 주고받았으나, 이른바 천리까지 그대를 전송해도 끝내 한 번은 이별을 하게 마련이니 어쩌겠소. 다만 한 가닥 희미한 아쉬움이, 하늘하늘 마음에 얽힌 채 공중의 환화幻花처럼 왔다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다시 아른아른 고울 뿐입니다.
別語關關. 所謂送君千里. 終當一別. 柰何柰何. 只有一端弱緖. 飄裊纏綿. 如空裡幻花. 來郤無從. 去復婀娜耳.
_연암 박지원, <경지에게 답함[답경지答京之]>에서



경지京之라는 인물을 경산京山 이한진(李漢鎭, 1732~1815)으로 보는 이도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아무튼 글 말미를 보면, 연암과 경지라는 인물은(연암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을 기준으로) 어제[昨日]” 만났다 헤어졌다.
헤어지며 얼마나 아쉬웠는지, 둘은 서로 1리를 떨어지고도 싹 돌아서 작별하지 못하고 1리 밖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연암은 벗과 헤어지는 아쉬움과 그 곡진한 정을 이토록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했다.

천리까지 그대를 전송해도 끝내 한 번은 이별을 하게 마련[送君千里. 終當一別]”이라는 표현은 전송하는 이가 아무리 쫓아와도 결국 이별의 순간이 한 번 찾아온다는 말이다. 곧 떠나가는 이가 아쉬워 자꾸만 쫓아오는 이에게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만류하는 말이다. 이 문장 바로 앞에 이른바라고 한 것은 이 표현이 한문 사용자 사이의 관용구였기 때문이다. 김명호 교수가 예시한 바에 따르면, <<수호전>>에서 무송武松이 송강宋江의 전송을 만류하며 이렇게 말한다:
 “
형님은 멀리 전송할 것 없소이다. 속담에 그대를 천리까지 전송해도 끝내 한 번은 이별해야 한다고 했소[尊兄不必遠送. 常言道. 送君千里. 終須一別].”

관용구나 속담뿐이라면 연암의 글이랄 것도 없다. 연암은 관용구로 상황을 압축한 뒤, 허공에다 환상의 꽃[幻花]을 영사하며 끝내 사라지지 않는 아쉬움을 불러낸다. 그 아쉬움은 하늘하늘 마음에 얽[飄裊纏綿]”히고 나서도 이내 사라지지 않는다. 공중에 핀 환상의 꽃은 다시 한 번 다시 아른아른 고울 뿐[去復婀娜耳]”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벌어지는 동안과, 그런 추이 속에서도 결코 칼로 벤 듯 끊어지지 않는 사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울린 예도 드물 것이다. 돌아보고 나서 또 돌아보는 그 마음을 형상화한 하늘하늘[飄裊]”아른아른[婀娜]” 또한 연암다운 수사로 빛난다.
이런 것이다. 연암은 이런 글을 쓰고 있었다. []


[사진_<<근묵>>에 있는 박지원의 글씨. 영인본 재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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