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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살펴볼 글은 연암이 경지에게 답한 세 번째 척독이다. <영대정잉묵>에 남아 전하는, 연암이 경지에게 보낸 척독은 이 글까지 해서 세 편이 전부다. 먼저 그 전문을 보자.

그대가 태사공太史公의 <<사기史記>>를 읽었다지만 그 글만을 읽었을 뿐, 그 마음은 미처 읽지 못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항우본기項羽本紀>를 읽고서 성벽 위에서 전투를 관망하던 장면이나 생각하고, <자객열전刺客列傳>을 읽고서 고점리高漸離가 축(筑, 고대 현악기의 하나)을 켜던 장면이나 생각하니 말입니다. 이런 쯤은 늙은 서생들이 늘 해 대는 케케묵은 이야기입니다. 또한 “부엌에서 숟가락 얻었다”는 소리와 무엇이 다릅니까?
어린아이들이 나비 잡는 모습을 보면 사마천司馬遷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내민 다리는 반쯤 꿇고, 뒤로 뺀 다리는 비스듬히 발꿈치를 들고서 두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만들어 다가가는데,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에 나비가 그만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은 없고, 어이없이 웃다가, 부끄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지요. 이것이 바로 사마천이 <<사기>>를 쓸 때의 마음입니다.
足下讀太史公. 讀其書. 未甞讀其心耳. 何也. 讀項羽思壁上觀戰. 讀刺客. 思漸離擊筑. 此老生陳談. 亦何異於廚下拾匙. 見小兒捕蝶. 可以得馬遷之心矣. 前股半跽. 後脚斜翹. 丫指以前手. 猶然疑蝶則去矣. 四顧無人. 哦然而笑. 將羞將怒. 此馬遷著書時也.
_<경지에게 답함 3[답경지지삼答京之之三]> 전문


첫 번째 척독에서 보았듯, 연암과 경지는 헤어지기가 아쉬워 1리나 서로 떨어지고도 딱 돌아서지 못할 정도의 우정을 나누는 사이이다. 한데 여기서는 경지가 <사기>를 읽고도 <사기> 행간에, 사마천의 마음속에 미처 육박하지 못했음을 신랄하다고 할 정도로 지적하고 있다.

<<사기>>는 연암의 글쓰기와 문학 방법론에 깊은 영향을 미친 고전이다. <<연암집>> <방경각외전> 속의, 소설을 방불케 하는 인물전의 원류를 <<사기>>의 열전이라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열하일기>> 곳곳에 드리운 ‘사마천의 그림자’는 고전은 고전으로 어떻게 이어지는가, 문학사는 문학사로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일대장관이다. 연암의 창작론을 대표하는 글 <소단적치인騷壇赤幟引> 또한 <<사기>>을 밑절미로 하고 있다.
이렇듯 연암은 <<사기>>를 깊이 읽었고, 유난히 좋아했다. 하여 나비 잡는 아이처럼 <<사기>>에 노닐었다. 노닐며 사마천의 “마음”을 헤아리곤 했다. 그러니 더욱 절친한 벗 경지가 <<사기>>를, 사마천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함이 섭섭했나 보다.

원문의 “족하足下”는 2인칭 대명사로 존경하는 상대에게 부치는 말이다. 연암은 경지에게 바로 “너 아직 <<사기>>를 제대로 읽지 못했군” 해놓고는 <항우본기>와 <자객열전>의 예를 끌어온다.

“성벽 위에서 전투를 관망하던 장면”이란 <<사기>> <항우본기> 속 거록에서 벌어진 전투의 한 장면이다.
진나라 시황제가 죽고 그 아들 호해가 뒤를 잇자 진제국은 분열한다.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사칭 및 참칭이 대부분이었지만 진제국 통일 이전의 옛 제후가 복고를 선언한다. 항우의 집안은 대대로 옛 초나라의 장군을 맡아왔다. 덕분에 항우는 다시 일어난 초나라의 군대에서 쉬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진나라 군대와의 전투에 소극적인 초나라 고급 지휘관을 제거하고 곧 병권까지 손에 넣는다. 그 뒤 항우는 초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장하를 건너 진나라 군대가 집결한 거록으로 진격한다. 항우가 지휘관을 제거하고, 강을 건너고, 전투하기까지, <항우본기>의 문단은 박진감이 넘친다.
장하를 건너고서 배를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 등 취사도구를 깨뜨리고, 병사들에게 3일치 식량만을 휴대하게 하고 진격할 때의 결기며 삼엄함이란 참말이지 읽는 이를 격발케 한다. 이어진 전투에서 항우가 이끈 초나라 군대는 함께 모인 제후군과 장수로 하여금, “초나라 군대가 진나라 군대를 공격할 때에 여러 장수들은 모두 자신의 진영에서 관망만 할 뿐이었다”의 상태로 몰아넣을 만큼 용맹했다.
바로 이 장면이다. 이 장면은 문자를 알고, <<사기>>를 아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장면이었다.

“고점리가 축을 켜던 장면”은 어떤가. 자객 형가는 진시황을 죽여 연나라 태자 단의 원수를 대신 갚고자 한다. 형가가 이제 막 연나라와 진나라의 국경인 역수를 건널 즈음 이 일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흰 옷에 흰 모자를 쓰고 강가로 나와 형가를 전송한다. <<사기>>는 이 장면을 이렇게 그렸다.

고점리는 축을 켜고 형가는 화답해 변치의 성조로 노래를 불렀다. 이때 듣는 이들 모두 눈물을 쏟으며 울었다. 형가가 또 앞으로 나오며 노래했다.

“바람 쓸쓸한데 역수가 차구나.
장사가 한 번 떠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우조로 강개한 노래를 부르니 사람들은 모두 눈을 부릅떴고 머리카락은 곤두서 모자를 찔렀다. 그때 형가는 수레를 타고 떠나며 끝내 돌아보지도 않았다.


기억하기 바란다. 연암이 <<열하일기>>의 첫 꼭지인 <도강록>, 그것도 그 첫날 기록에다 형가와 고점리의 일을 인용해 강 건너 청제국으로 들어가는 자신의 마음을 은유했음을.
연암은 이제 막 압록강을 건너 미답의 땅으로 들어가는 연암의 심정을 한 자루 비수를 쥐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적국으로 떠나는 자객의 심정으로 은유했다. 그만큼 이 장면은 연암에게도 강렬한 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거록의 전투든, 역수에서의 도강이든 다만 거기에 “고착”되어 있을 뿐이라면, 연암이 보기에 글에, 글쓴이의 마음에 육박한 것이 아니다.
고착되어 “거록 전투 끝내주지?” “고점리 정말 강개하지 않냐?”에서 끝난 독서란 “부엌에서 숟가락 얻었다”는 속담처럼, 별일 아닌데 떠는 호들갑, 하나마나 한 소리에 이어질 따름이라는 말이다.

이하 아이가 나비 잡는 문단에 대해서는 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을 듯하다.
그저 읽으며 빙그레 웃을 뿐.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은 없고[四顧無人]”, 곧 “누구한테 이 쑥스러운 상황을 들킨 것도 아닌데”의 울림이 문득 삼삼하다.
“그 마음은 미처 읽지 못했습니다[未甞讀其心耳]” 또한 삼삼하다. 부정사 “미未”에는 “불不”이나 “불弗”과 달리 “시간”이 깃들어 있다. “미未”에 깃든 “아직 ~아니다”의 뜻을 새기며 위 문장을 다시 한 번 새기기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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