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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계급사회일까요? 문화학자 엄기호는 <나는 세상을 리셋하고 싶습니다>(창비)에서 “위와 아래가 아니라 안과 바깥이라는 신분제적인 위계가 다시 등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가장 실체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입니다. “노동력이 남아도는 시대에 사람을 안과 바깥으로 나누고, 바깥의 존재에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미끼로 (던지고 그들을) 아무런 보호 조치 없이 일회용품처럼 써먹다가 버릴 수” 있는 사회이니 계급사회가 맞습니다.

엄기호는 구의역에서 혼자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죽은 노동자야말로 철저한 바깥의 존재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지하철공사 하청기업의 외주노동자였습니다. 그야말로 “바깥의 바깥”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안’에 대한 약속은 강력한 유혹이었으며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할 수 있게 하는 동인이었을 것”입니다. “조금만 더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고, 조금만 더 하면 지하철공사의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유혹은 그에게 그 어떤 위험도 기꺼이 질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엄기호는 이런 점에서 “한국의 자본주의는 조폭을 꼭 닮았다”고 말합니다. 보통 조폭들이 칼부림을 할 때 맨 앞에 세우는 사람은 중학생입니다. 그 조직의 가장 하부, 아니 그 조직의 경계에 있는 존재에 불과한 중학생은 조직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목숨을 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위와 아래가 아닌 안과 바깥으로 시민을 분할하여 통치하는 새로운 계급사회, 아니 신분제적 사회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주는 곳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값싼 노동으로 행정과 강의의 최전선이 지탱되는 대학이 아닐까요? <대리사회>(와이즈베리)의 저자 김민섭은 원래 한 ‘지방대학의 시간강사’(지방시)였습니다. 그는 생계를 위해 한 달에 60시간씩 노동을 한 맥도날드에서는 법에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를 모두 보장받았지만, 연봉 1000만원 남짓한 시간강사로 일하면서는 4대 보험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정규직 교수의 꿈을 안고 대학에서 조교와 시간강사를 하며 그렇게 8년을 버텼지만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더 위하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라는 선언이 담긴 <나는 지방대학 시간강사다>(은행나무)를 펴낸 다음 반강제적으로 대학 바깥으로 쫓겨나왔습니다. 그는 1년3개월 일한 맥도날드에서는 퇴직금을 받았지만 8년을 일한 대학에서는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김민섭은 “온전한 나로 존재하지 못하고 타인의 욕망을 위해 보낸” 8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했습니다. <나는 지방대학 시간강사다>의 어느 장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되든 육체노동을 반드시 하겠다”고 썼던 그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처음으로 선택한 것은 대리운전이었습니다. 그는 타인의 운전석에서 모든 ‘행위’와 ‘말’과 ‘사유’가 통제당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고 깜박이를 켜는 간단한 조작 외에는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손님(차 주인)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했습니다. 주체적으로 행위하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사유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와도 같았습니다.

그는 “한 개인의 주체성을 완벽하게 검열하고 통제”하는 타인의 운전석에서 신체뿐만 아니라 언어와 사유까지도 빼앗기는 경험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모든 개인은 주체와 피주체의 자리를 오가면서 주체가 되기를 욕망하고, 타인에게 순응을 강요한다. 그런데 그것은 사회가 개인에게 보내는 욕망과 그대로 일치한다. 특히 국가는 순응하는 몸을 가진 국민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 어떤 비합리와 비상식과 마주하더라도 그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 국민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그는 “타인의 운전석보다 나은 노동의 현장이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기업은 늘 다양한 방법으로 노동자의 주체성을 농락합니다. “인턴이라는 정체불명의 직함을 부여하고서는 무임금으로 사람을 부리고, 언제든 해고하고,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조차 보장하지 않아도 기업에는 잘못이 없다. 그에 더해 국가/정부는 기업을 위한 법안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간다. 결국 노동자는 노동 현장의 주체가 아닌 대리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최순실이 지시하면 마리오네트처럼 따르며 국민을 일회용품처럼 이용하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날로 치솟고 있습니다. 입만 열면 나오는 거짓말을 질타한 이들은 엄기호의 지적처럼 “스스로의 이름을 내걸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동료 시민’들이었습니다. “시대와 사회가 구제불능”이라며 “깡그리 망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리셋)하자”던 사람들이 평등한 민주주의를 구현하자고 함께 소리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욕망을 최전선에서 ‘대리’하는 대학”에서 쫓겨난 김민섭은 ‘대리인간’으로 사는 고단함을 길거리에서 체험했습니다. 한발 물러서서 자신의 공간을 타인의 눈으로 바라본 그는 주체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우리 사회에 균열을 내는 ‘송곳’ 같은 사람들이 늘어나야만 우리 사회의 불안과 절망을 떨쳐낼 수 있습니다.

요즘 초등학생들마저 “그네가 움직이려면 바람이 순실순실 불어야 한다”고 노래한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도 대리인간으로 살면서 많이 힘드셨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이름도 모르는 온갖 약에까지 의지하셨을까요? 이제 힘에 부치는 무거운 짐을 하루빨리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제발 <대리사회>부터 읽고 주체인 ‘나’로 거듭나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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