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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이 젊음으로 넘실거린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산과 계곡과 바다에 모습을 드러낸 젊은이들이 유독 눈에 띈다. 건강한 신체, 지치지 않는 에너지, 넘치는 기상. 뭣이 그리도 즐거운지 자기들끼리 뒹굴고 노느라 정신이 없다. 특히 부모님 슬하를 벗어나 어엿한 성인으로서 친구끼리 여행 온 20대 대학생들의 자유로움은 청춘을 몸으로 보여준다.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나도 한때는 저랬지. 좋을 때다. 이렇게 사람 구경하며 과거를 반추해보는 것도 피서의 한 가지 맛. 어느덧 상념은 추억 속을 거닐고 있다.

가만 있자. 맞아 그랬지. 히히히. 하지만 그 시절이라 해도 모두 좋은 기억만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힘들었던 때도 많다. 학기말 시험공부, 취직과 결혼 걱정, 산더미 같던 리포트…. 참, 이제는 그런 거 다 벗어나서 다행이다. 안도의 미소를 지어본다.

하지만 정녕 모두 벗어난 것일까? 웬만한 통과의례는 다 해치웠는지 몰라도 한 가지는 끝까지 따라와 절대로 떨쳐버릴 수 없다. 뭔고 하니 바로 리포트이다. 어디서 뭘 하든, 기안이나 보고서 등 과거 리포트에 준하는 각종 문서 작성의 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분야는 달라도 결국 활자화된 문서로 의사소통하며 업무를 진행하는 것만은 모두 마찬가지가 아닌가. 글로 의미를 확정하고 전달하는 행위는 시간을 초월한 가장 본질적 행위 중 하나이다.

그래서 대학생 때 리포트를 쓰며 연마했던 각종 기술은 평생 쓰인다. 온갖 테크닉이 있겠지만 핵심은 단순하다. 말이 되는 말을 쓰는 것이다. 방금 타자 친 그 문장을 읽고 나서 그것이 비문인지 아닌지, 시제와 앞뒤 호응은 맞는지, 따지고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의미의 측면에서 문장의 기초 논리가 성립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가령 “우리나라는 면적이 작아서 공간이 여유롭다”와 같은 문장을 쓰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기계적인 오류는 없어 보이는 문장이라도 의미론적으로 ‘말이 되지’ 않으면 논리를 구성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한다.

직관적으로 말이 안되는 문장을 굳이 삽입하려 한다면, 그것은 별도의 설명 또는 정당화를 필요로 한다. 명확하고, 당연하고, 근본적인 규칙이다. 그리고 이 규칙은 모든 종류의 글쓰기와 말하기에서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생태 및 환경 분야에 관한 발언이나 기사를 보면 이런 기본조차 대단히 심각하게 위배한 사례들이 즐비하다. 말 못하는 자연이 관련되어서 함부로 대하는 것일까? 그저 실수로 보아 넘기기엔 그 의도마저 불순하게 느껴져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가령 7월9일 기사에, ‘정부가 메르스 사태로 인한 외국인 관광객 감소 대책의 하나로 전국 산 70% 정상에 골프장과 호텔, 레스토랑 등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했다. 전염병에 의한 감소라며? 그렇다면 당연히 전염병이 창궐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 그 사태에 대한 대책이 아닌가? 어엿한 문장처럼 보이지만 산을 깎아 골프장을 짓게 한다는 문장의 뒷부분은 앞부분에 의해 조금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같은 기사 말미에 ‘기획재정부는 인구감소로 사람들이 산에 많이 가지 않으면서 산길이 사라지는 등 산이 되레 황폐해져 사람이 많이 찾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산길이 없어지는 것이 산의 황폐화라니! 이것은 마치 머리숱이 적어지는 것을 머리의 황폐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자연이 울창해지는 현상을 황폐화로 본다면 출입이 금지된 보호림이나 복원사업 따위는 다 뭐란 말인가? 이런 논리에 따르면 비무장지대(DMZ)야말로 가장 황폐화된 곳이다. 산 정상에 올라가 민둥산이 안 보이면 혀를 차야 할 지경이다.

비슷한 사례를 찾는 것은 쉽다. 주남저수지의 일부인 산남저수지에 30억원을 들여 낚시터를 만든다는 계획을 다룬 7월10일 기사에서는 창원시 관계자가 ‘산남저수지에는 오리 몇 마리 있고, 두루미 이런 게 안 옵니다. 서로 윈윈하고 살아야 되죠’라고 하고 있다. 안 그래도 급속도로 감소하고 있는 서식지가 바로 습지다.

국제 습지협약인 람사르협약에 엄연히 등재된 주남저수지와 완전히 한몸인 저수지. 생물이 별로 살고 있지 않다는 말도 물론 사실이 아니지만, 마치 ‘오리 몇 마리’는 고려의 대상도 아니라는 뉘앙스. 게다가 자연서식지에 대한 개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윈윈이라는 해괴망측한 표현의 사용. 이런 발언을 한 사람은 졸업장을 모조리 압수하고 학교를 처음부터 다시 다니게 해야 한다. 자신의 터전에 수백개의 낚시 바늘이 들어오는데, 약간이라도 새에게 ‘윈’인 상황은 없다.

지면의 부족으로 예를 끝도 없이 들 순 없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발언을 여기에 포함하지 않고서는 이 컬렉션이 완성될 수 없다. 약 2년 전 그는 ‘녹조가 생기는 건 수질이 나아졌다는 뜻’이라고 했다. 아 그렇구나. 그러니까 쓰레기통에서 썩고 있는 저 음식은 점점 먹기 좋아지는 것이구나. 녹조는 강이 내뱉는 가래 정도인가 보구나. 이 정도로 모든 것을 엎어도 되는 거면 말이 무슨 소용인가. 허탈한 쓴웃음만, 야생학교는 짓는다.


김산하 | 영장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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