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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일어난 일이다. 내가 사는 집 앞에는 작은 녹지가 하나 있다. 제대로 된 마당이라고 할 수는 없는, 몇 그루의 나무와 관목으로 꾸며진 얇은 녹색 띠에 불과하다. 조경업자들이 인공적인 시각과 방법으로 조성한 녹지가 다 그렇듯, 이렇다 할 생물이 발붙이고 살 만한 곳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찾아오는 이들이 있고, 그중에서도 내가 애타게 기다리는 방문자가 있다.

바로 둥지를 틀러 오는 새들이다. 오목눈이들은 그저 놀다 가기만 하고, 어치 한 쌍이 집을 보러 왔다가 마음에 썩 안 차는지 연락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멧비둘기 부부가 찾아왔다. 거실 창문 바로 앞 나무에서 조류 새댁의 움직임이 점점 부산해지더니, 며칠 후에는 둥지의 기틀 같은 것이 나무 깊숙한 곳에 만들어졌다. 새들이 이사를 온 것이었다! 나는 새들의 마음이 바뀔세라 창문 주변에 함부로 다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위층으로 이사를 왔다. 사다리차가 오더니 나무 사이를 벌려놓고 기계음을 내며 가구를 날랐다. 멧비둘기 신혼집이 있는 바로 그 나무를 건든 것은 아니었다. 짐 운반도 하루 안에 마무리되었다.

몇 그루 건너서 벌어지는 몇 시간의 작업이었음에도, 그날 새들은 떠났다. 둥지를 버린 채. 인간에게 가장 익숙한 도시 조류인 멧비둘기조차 그해의 번식을 포기할 만큼 사다리차의 왕복운동은 불편했던 것이다. 사람이 이사온 날이 바로 동물이 이사를 간 날이었다.

자연은 죽더라도 천천히 죽는다. 개발이 닥친 숲에 갑자기 사체가 나뒹구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점점 좁은 면적에 몰리게 되고, 번식률이 떨어지면서 개체군이 서서히 감소한다. 여기에 질병이나 자연재해 등의 우연적 사고가 발생하고, 서식지 부족으로 다 자란 개체들이 독립을 하지 못해 경쟁이 치열해진다. 영양 섭취 활동이 어려워지고 그럴수록 번식은 뒷전으로 밀린다. 개체군은 더욱 줄어든다. 어느새 동종(同種)을 만나기가 어려워진다. 외로운 이들이 터덜터덜 걷다가 하나둘 픽픽 쓰러진다. 마지막 개체마저. 멸종이 찾아온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국립공원에 한 번도 허가되지 않았던 케이블카를, 이 땅의 가장 깊은 산 중 하나에 세우도록 승인되었다는 비보(悲報)가 울려퍼진 8월28일은 역사에 남을 생태적 국치일이다. 차라리 외세에 의해 우리의 것을 침탈당했을 때는 슬퍼할 자격이라도 있다. 스스로 천연보호구역,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국립공원,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 등 5개씩이나 보호구역으로 지정해놓고서 뒤엎은 자가 무슨 낯으로 눈물을 흘리겠나. 그저 한없이 치욕적일 뿐이다.

산양에게 붙인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이라는 초라한 딱지는 어린이나 외국인이 보면 어쩌나 두렵고 수치스러운 우리의 추한 민낯이다. 이미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산양 서식지의 심장부에 쳐들어가는 바로 그 결정을 내리면서, 그 조건으로 “산양 문제 추가 조사 및 멸종위기종 보호대책 수립”을 내세우는 자기모순이 부끄러운 줄 모르는 뻔뻔함. 행동권역이 0.88㎢에 불과한 설악산 산양에게 이동통로와 서식지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무식하고 폭력적인 억지. 거기에다 지리산과 함양군 등 10여곳에서 추진하는 케이블카 사업의 물꼬를 터준 국립공원위원회. 이번 결정에 찬성, 유보 및 기권 표를 던진 위원회 소속 17인은 이 땅의 생명과 생태 역사의 반역자들이다.

설악산 케이블카 논란은 개발과 보전 간의 대립 이슈가 아니다. 국토의 5~6%에 불과한 국립공원은 다른 데는 지지고 볶더라도 여기만큼은 자연에 맡겨두기로 우리가 결정한 공간이다. 겨우 벼룩의 간을 떼어주고도, 이젠 그것마저 손대겠다는 것은 넘지 말아야 하는 마지막 선을 넘는 행위요, 반(反)생명의 판도라 상자를 열어젖히는 행위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케이블카 설치가 노인 및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는 오류이다. 그들보다 훨씬 약자인, 단순히 교통이 문제가 아닌 생존 차원의 약자인 동식물의 권리가 우선되어야 하는 곳이 바로 국립공원이다. 게다가 ‘인간의 볼 권리’라는 미명하에 자연의 희생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는 바로 동물원의 기초 논리와 일치한다. 누구나 아프리카에 갈 수 없기에 기린과 사자를 잡아와야 한다는 주장은 과거에는 통했는지 모르지만, 세계 최초로 동물원 없는 국가가 탄생하고 있는 작금의 시대에는 이미 폐기된 논리다.

설악산 개발 문제는 양양군 주민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오류이다. 산양, 담비, 삵, 하늘다람쥐 등 진짜 설악산 주민, 설악산 본인보다 중요한 당사자는 없다. 또한 설악산 국립공원은 한 지자체의 관할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는 물론 세계의 유산이다. 자신의 영토 내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문화재를 깨부숴 팔아먹는 이슬람국가(IS)의 만행을 국제사회가 입을 모아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화가 정선이 오늘날 다시 태어나 산수화를 그린다면 능선에 케이블카를 덧칠해야 할 판이다. 허망하고, 부끄럽고,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야생학교는 흐느낀다.


김산하 | 야생학교 영장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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