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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어스름할 때 버스에서 눈을 뜨면 화들짝 놀라곤 한다. 순간 흰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 가운데 있는 착각이 들어서다. 가끔은 눈이 쌓였나 싶어서 한참 눈을 비벼 다시 보곤 한다. 대형 비닐하우스 단지를 보고 착각해서다. 분명 몇 년 전에는 논이었던 곳이다. 이제 저곳에서는 푸른 들판과 황금 들판을 볼 수 없게 되었구나, 계절감이 그렇게 사라져버린다. 번쩍번쩍하는 태양광 패널을 만나는 일도 많다. 들판 곳곳에 설치되어 있기도 하고 산에도 태양광 패널이 빼곡하게 들어선 풍경을 마주치곤 한다.

한국은 태양광발전 시설의 신규 설치 실적이 현재 세계 7위다. 도시에서는 피부로 느끼기 어렵지만 확실히 농·산·어촌에 가면 태양광 시설이 많이 늘어났음을 느낀다. 문재인 정부에서 203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20%를 신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렇다면 대안은 태양광, 풍력발전 정도일 것이다. 그만큼 국가가 정책적으로 태양광 시설 설치에 지원을 하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땅을 농·산·어촌이라고 본 것이다.

남동발전은 지난해 6월 벼농사와 전력 생산이 가능한 ‘영농형 태양광발전’을 개시했다. (출처:경향신문DB)

‘햇빛 농사’의 이름으로 태양광발전 시설 설치는 주로 농촌에서 이뤄진다. 농촌에서는 이 태양광 패널 설치 문제로 곳곳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 마을 태양광 설치 절대 반대’와 같은 현수막이 나붙고, 주민들이 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또 반대로 나이 들어 농사지을 힘도 없고, 용돈벌이라도 할 수 있으려나 싶어 태양광 패널 설치에 솔깃한 농민들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외지인들이 주도하는 사업이다. 농사는 안 짓고 땅만 가진 외지인들은 내 땅에 배추를 심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든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이다. 대체로 최근 농촌의 태양광발전 사업이 농촌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구하지 않고,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외지인들 중심으로 실시되다보니 갈등이 더욱 깊어진다.

산을 깎고 설치한 태양광 패널 때문에 산사태 우려도 있다. 실제로 여름 끝에 내린 집중호우에 태양광 패널과 흙이 떠밀려 내려온 곳들이 많았다. 주민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다. 또 태양광 에너지는 재생에너지일지 모르지만 태양광 패널은 시간이 지나면 폐기물이 되고 그 성분을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해 토양오염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런 계산까지 꼼꼼히 하고 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태양광 시설은 땅에서는 곡식과 채소가 나와야 한다고 믿는 농민들의 정서와도 많이 충돌한다. 평생 익숙했던 동네의 풍광이 변하는 것도 상실감을 준다. 특히 ‘햇빛싸움’도 농민들에겐 물꼬싸움만큼 중요하다. 태양광 시설이 그늘을 지게 해 주변 농지의 수확량에 영향을 줄까 걱정이다. 결정적으로 농촌은 언제까지 도시의 필요에 따라 배후지의 역할만 하느냐는 모욕감도 있다. 돌이켜보면 농촌에서는 국가 시책이 정해지면 땅도 내놓고 노동도 보태면서 신작로도 내고 다리도 놓았다. 고작 시멘트 몇 부대 던져주고는 알아서 국가의 큰 그림에 동참하라는 명령을 하달하던 역사가 있다. 현재 국가의 에너지정책은 노골적으로 말하면 도시의 블랙아웃을 걱정하는 것이다. 탈원전 기조가 중요하고 신재생에너지의 뜻이 아무리 고결하다 하더라도 그 걱정을 농촌에 또 떠밀고 있는 셈이다. 이는 도시의 화려한 야경과 쾌적성을 위해 농촌에 새로운 그늘을 드리우는 것이 아닌가. ‘햇빛농사’를 오래도록 지어왔던 이들은 본래 농민이었건만.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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