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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여적]통조림과 세균

opinionX 2018. 10. 26. 10:59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 원정에 나섰을 때다. 양제는 초대규모의 병력을 좌군 12군단, 우군 12군단으로 나눠 전부 평양으로 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원정군은 출발이 끝나는데 40일이 걸렸고, 깃발이 960리에 뻗쳤다고 한다. 가히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는 당시 수나라 군대가 무릇 113만3800명, 군량과 군수품을 맡은 이는 그 배가 되었다고 했다. 군사보다도 지원 인력이 많았던 것이다. 고대의 전쟁에는 전투원뿐 아니라 가족과 노비까지도 동반했다. 길게 이어진 소·말의 운반행렬은 집단이주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무기가 없으면 싸울 수 없듯이 배고픈 병사는 승리할 수 없다. 양초(糧草)문제 해결 없이 승전은 언감생심인 것이다.

통조림은 전쟁의 발명품이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인 1804년 프랑스는 군대에 음식을 쉽게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을 공모했다. 여기서 제과업자인 니콜라 아페르가 제안한 ‘병에 삶은 음식을 넣고 병째 끓여 코르크 마개로 밀봉하는 방식’이 선택됐다. 오늘날 통조림의 시초다. 당시 “온실 안에서 식물을 보호하듯, 병 안에 봄과 여름과 가을을 살아 있게 만들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전투식량으로 활용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에 침공해 모스크바까지 점령했지만 식량확보에는 실패했다. 러시아가 밀을 모두 태워버리는 바람에 프랑스군은 추위와 굶주림 속에 퇴각하며 90% 가까이 사망했다.

청정원 '런천미트'

통조림은 전투식량을 넘어 생활식량이 됐다. 고기·야채·비스킷·분유 등 웬만한 음식은 통조림 제품으로 나온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위생문제가 있었다. 초기 제품은 뚜껑을 사람 손으로 납땜질을 했기 때문에 납중독 사례가 종종 발생했다. 완벽하게 살균되지 않은 데다, 밀폐가 제대로 되지 않아 세균이 번식한 경우도 있었다. 통조림의 이런 치명적 결함은 기술이 부족했을 과거의 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국내 굴지의 통조림 제조업체 제품에서 세균이 발견됐다. 지난 23일 청정원은 “자사 통조림 햄 ‘런천 미트’에서 세균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발표했다. 회사 측은 모든 캔 제품을 회수하고 환불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의 제품은 대부분 소비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후약방문이 아닐 수 없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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