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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색깔의 죽음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죽음으로 자신의 명예를 지키거나, 죽음으로 점진적인 사회변화를 촉발하는 경우가 있다. 전태일의 죽음이 그랬고, 이한열의 죽음이 그랬다. 그런가 하면 비극적인 죽음으로 세인의 기억 속에 화인처럼 자리 잡는 사례가 있다. 죽음을 통해서 영원한 생을 얻는 사건이 이에 해당한다.

1980년 12월8일. 본격적인 겨울의 문턱에서 어떤 죽음과 마주쳤다. 저녁 라디오 방송에서는 그의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그해 겨울 내내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스피커를 마주하고 노래 ‘이매진’을 들었다. 사춘기 중학생의 감정샘을 자극할 만한 유려한 곡이었다.

1940년생인 존 레넌은 1957년 당시 스키플밴드의 리더였다. 그해 음악동료의 소개로 폴 매카트니와 조우한다. 존 레넌은 두 살 연하의 폴 매카트니를 흔쾌히 음악동반자로 받아들인다. 성실하고 합리적 성향의 매카트니와 직관적이고 감성적 성향의 레넌의 조합은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쏟아낸다. 이후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이 합류한다.

영국 북서부 노동자계급 출신인 이들의 음악행보는 1960년대 초반부터 거칠 것이 없었다. 무명밴드로 1950년대 말을 버텨낸 젊은 음악가들의 열정과 재능은 시간이 흐를수록 단단해진다. 게다가 레넌과 매카트니는 독특한 음악적 조합을 꾀한다. 그들은 늘 함께 노래를 만들었으며 저음부와 고음부를 조화롭게 분담하는 형태를 취한다.

매니저 브라이언 앱스타인의 가세는 비틀스에게 날개를 달아준다. 1963년 초반부터 이어진 비틀스 광풍은 이듬해 영국 출신 그룹 최초로 미국 음악시장을 석권하는 이변을 낳는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정서를 대표한다는 록음악가로서 비틀스를 바라보기엔 모호한 부분이 많았다. 비틀스를 영국 수출산업의 역군으로 둔갑시키려는 정부의 입김과 중산층 팬을 흡수하려는 브라이언 앱스타인의 비틀스 상품화 전략이 그 원인이었다.

다행히 비틀스에는 레넌과 매카트니라는 최고의 싱어송라이터가 있었다. 이들의 풍부한 음악지식과 작사 작곡 능력은 자본화된 대형음반사와 프로듀서의 입김으로부터 자율성을 지켜낼 수 있는 단초였다. 특히 1965년 이후 사랑 타령에서 사회적 이슈로 음악소재를 확장하는 레넌의 존재감은 비틀스의 음악성을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동력이었다.

음악가이자 사회운동가이자 오노 요코의 예술적 동료였던 레넌은 비틀스로부터 조금씩 멀어져 간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비틀스의 리더가 된 매카트니의 독선도 그룹 해체의 원인이었다. 비틀스의 3인자였던 조지 해리슨의 불만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1968년 설립한 애플레코드사의 경영악화가 그룹 해체에 치명타로 작용한다.

1970년대 이후 레넌의 시선은 전 세계로 향한다. 베트남 전쟁반대와 닉슨 행정부를 비판하는 그의 존재감은 미국 FBI가 도청 및 미행 대상으로 지목하기에 이른다. 수년간에 걸친 레넌의 미국 입국과 영주권 승인 거부를 주도했던 미국 정치권의 부박한 태도는 줄곧 비난의 대상이 된다. 1975년부터 레넌은 페미니즘 사상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1980년 12월6일. 한 청년이 뉴욕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한다. 뉴욕 라코타하우스 주변을 서성거리던 마크 채프먼은 이틀 후 레넌과 두 번째로 마주친다. 12월8일 밤 10시50분. 청년은 레넌을 향해 다섯 발의 총탄을 발사한다. 마크 채프먼은 책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살인을 결심했다고 진술한다. 그날 11시15분. 레넌은 과다출혈로 세상을 떠난다.

레넌은 뉴욕 매디슨가 프랑크 E. 캠벨묘지에 안장된다. 미국 센트럴 파크에는 10만에 가까운 인파가 몰려든다. 미국과 영국은 정규 라디오방송을 중단하고 비틀스의 음악을 내보낸다. 대학가에서는 추도집회가 연이어 열렸고, 1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세대가 평화의 촛불을 들었다. 타임은 ‘When the Music Died’라는 애도의 글을 올린다.

노래 ‘이매진’을 통해서 종교와 내세, 국가와 민족주의, 자본주의와 맞섰던 존 레넌. 나는 노래 ‘이매진’의 의미를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던 청소년이었다. 그나마 다행은 이념적 성향의 노래를 가차 없이 금지하던 억압의 시절에 명곡 ‘이매진’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뉴욕과 서울을 밝히던 촛불정신과 함께 그의 빛나는 음악정신은 영원할 것이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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